갈등을 요리하는 집

김억중 한남대학교 건축학부 교수(건축가)l승인2018.05.08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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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 : 김억중

“안방 식구란 덕기의 서조모 식구다.... 서시어머니가 안방 차지를 한 지가 5년, 따라서 덕기의 부모가 따로 나간지가 5년이다.... 칠십 당년에 첩의 몸에서 고명딸 겸 막내딸을 낳았다.... 그러나 (덕기가) 중학교 4학년 때 장가를 들자 반년쯤 부모 앞에서 지내다가 이 할아버지 집으로 옮아왔다.... 혼인한 이듬해에는 건넌방에서도 아이 우는 소리가 나게 되었다. ... 증조부가 간혹 건넌방 아이를 좀 안아 주면 안방마마의 눈귀가 가로 째지는 것이었다.”(염상섭, 삼대)

염상섭의 ‘삼대’를 보면, 안방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가족간의 갈등이 복잡하게 나타나 있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안방은 모권의 상징적인 장소다. 덕기 모친 입장에서 보면, 자신보다 나이 어린 서시어머니 때문에 안방을 내주어야 했으니 그 이가 고까울 수밖에 없는데 다, 덕기의 첫 아들을 시기 질투하게 되니 갈등은 커가기만 한다. 네 살짜리 할머니(덕기 서조모 딸)와 세 살 먹은 손주(덕기 아들) 사이의 싸움은 어른 싸움으로 번지기 일쑤다. 가족들은 덕기 조부의 일언지하에 숨죽이며 살아가지만, 속으로 쌓여 가는 갈등의 골은 깊어진다.

삶이 고해다. 소설 속 집은 여러 채로 나누어지지 않고 한 채 안에 안방과 건넌방으로 이루어진 듯하다. 안방과 건넌방 사이는 눈만 뜨면 언제든 부딪힐 수 있는 거리를 두고 있어, 스트레스를 잠재울만한 여유가 없다.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또 다른 상처를 부르는 공간 구조가 더 큰 문제일 수 있다.

요즈음에는 이처럼 복잡한 가족관계를 찾아보기도 힘들거니와 한 집에서 3대에 걸친 갈등을 빚어내는 예는 거의 없다. 그렇다고 해서 가족 사이 갈등이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니다. 그 규모와 양상이 다를 뿐, 고부간 갈등도 여전하며, 남편과 부인 사이, 자식과 부모 사이의 갈등 또한 여전하다. 삶이 있는 지속되는 한, 풀어야 할 영원한 숙제다. 그렇다고 가족 사이 갈등을 피하기 위해 따로 분가하는 일만이 능사는 아니다. 가족의 평화를 소중히 여긴다면 개체와 공동체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공간 구조를 깊이 생각해볼 일이다. 가족들이 서로 화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부분도 있지만 지혜를 모아 공간 속에서 해소해야 할 과제도 분명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런 노력을 한 연후에나 못난 사람 탓을 할 일이다.

“별채의 내 방 창에서 시선을 아래로 빗금으로 내리 꽂으면 안채의 밝고 넓은 거실이 한눈에 들어왔다... 나는 자주자주 결코 늘어날 리 없는 빗금의 길이를 재느라 헛되고 헛되이 시간을 보냈다. ...그분의 전화기가 외부와 나 사이를 둑처럼 차단하고 있는 걸 빤히 바라보는 위치에서 나는 거의 절망적인 거짓말쟁이가 되었다.... 이를테면 ‘시집살이가 어떻니?’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가장 흉허물 없는 친구에게도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나타내지 못했다. ‘얘는 시집살이랄 것도 없어. 우리끼리 멋대로 살아. 시어른들이 워낙 이해성이 많은 신식 분들이시거든. 우리의 프라이버시는 물론 당신들의 프라이버시를 위해서도 우리를 당신들의 집에 들이시지도 않았다면 말 다 했잖아. 우린 완전 별채에서 살아.”(박완서, 서울사람들)

아래채와 별채로 이루어 진 소설 속의 집은 보기에 그럴 듯하다. 탁 트인 시선은 집안의 화목함을 드러내는 징표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시야가 트여있는 집 안 구조는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고부간의 갈등을 더욱더 키우는데 이바지하고 있다. 아래채와 별채 사이에 피할 수 없는 시선의 괴로움, 그 절망적인 거리 앞에서 며느리는 거짓말쟁이가 되어야 하는 고통마저 떠안는다. 세상으로부터 소외의 늪은 깊어만 간다. 며느리는 집 안의 소품처럼 전시된 삶을 살아가야 하는 형벌 속에 갇혀있다. 집은 창살 없는 감옥과 다름없다. 소설 속의 남편이라는 위인은 제 앞가림조차 못하는데, 어디에다 하소연할 수도 없다. 며느리는 끝내 아래채 어르신과 불화하고 아우성칠 수밖에 없다는 다짐을 하면서, 소설은 끝을 맺는다. 그러나 빤히 내비치는 시선을 거두지 않는 한, 목청 돋구어 싸워본들 그 갈등이 어디 가랴. 누구든 마음을 다스리고 덕을 키워 갈등을 해소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 갈등의 원인이 집안에 있다면, 집이 바뀌어야 한다. 떨어져나간 파편을 이어 붙여 그릇을 만들어 본들 그 그릇이 성하지 않은 것처럼... 소설가는 공간 속 프라이버시가 얼마나 소중한 삶의 조건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갈등을 요리하듯 잘 삭여낼 수 있는 공간구조를 지니려면 무엇보다도 각자의 영역이 존중되어야 한다. 방문을 닫는다고 해서 온전한 영역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한바탕 다투고 난 후, 누군가 집을 나가지 않고도 자신의 존재를 침묵 속에 되돌아볼 수 있는 내밀함이 있어야 한다. 피차간에 마음을 다스려 쑥스럽지만 화해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둘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가족관계의 갈등을 화해로 이끌 수 있는 덕목을 지녀야 비로소 집다운 집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억중 한남대학교 건축학부 교수(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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