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역할을 떠올린다는 것

김완하(시인, 한남대 문예창작학과 교수)l승인2015.07.27 09:28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우리 시대의 시인의 역할

                         김남조(1927~ )

 

시인은 언제나 순백의 새 원고지를 의식합니다. 비록 그가 여러 권의 책을 펴낸 바 있더라도 그 책들의 맨 위에 거듭 거듭 백지를 펴놓습니다. 전날의 글들은 이미 독자의 것이며 흐릿한 연필 글씨로나마 뭔가 새로운 진실을 기록하지 못한다면, 오늘 그가 차지할 아무것도 없습니다.

시인이고자 하고 사실상 시인인 동안까지는 험준한 내면의 동반을 감내해야 하며 새로운 백지와 견고한 침묵과의 대결이 불가피합니다. 마치도 이 질긴 껍질을 찢어 내야만이 막혀있는 자신의 영혼을 밖으로 분출시킨다고 믿는 신앙 행위와도 같습니다.(379)

 

 

▲ 김완하 교수

시인의 역할을 떠올린다는 것은 늘상 우리가 살아가면서 대면해야 할 어떤 정신의 지표라 할 수 있다. 그가 시를 쓰려는 사람이든 일상에 좀더 성실하려는 사람이든 간에 그는 늘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의 앞에는 한없이 넓고도 넓은 바다가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바다에는 누군가 이전에 전혀 가보지 못한 신비롭고도 새로운 섬들이 숨어 있는 까닭이다. 나중에서야 우리는 누군가 이름 붙여놓은 아주 작은 섬에 가서 그 앞에 열린 또 다른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그처럼 우리 인간들은 저 바다 가운데 한 목숨 붙이기 어려운 작고 가파른 섬에조차 이름을 붙여줌으로써 인간으로서의 권위와 위엄을 지키려 노력한다. 그것은 어쩌면 시인이 시를 쓴다는 것과 한껏 통하는 이치일 것이다. 그런 즉, 우리 모두는 시인들이 아닌가. 우리 사는 일생의 전 과정이 다 시를 쓰는 고행의 시간이 아니던가. 그러므로 우리의 삶은 모두 위대한 시를 쓰는 과정으로서의 역정(歷程)이 아닐 수 없다.

 


김완하(시인, 한남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저작권자 © 미디어대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기기사

기사 댓글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최대 400byte

숫자를 입력해주세요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대전광역시 유성구 봉명동 551-7 한진오피스텔 315호
대표전화 : 010-5455-4311  |   등록번호 : 대전 아 00225  |  등록년월일 : 2015. 4. 10  |  발행인·편집인 : 박기성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기성
Copyright ©2015미디어대전.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