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

김완하 한남대 국어국문창작학과 교수l승인2017.08.27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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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순태(1941~ )

 

누가 너를 작고 못 생겼다고 할까
너의 짧은 생은 참으로 치열했고
마지막 은빛 파닥거림은 장엄했다
너는 떼 지어 다닐 때가 빛났고
혼자 있을 때는 늘 빳빳한 주검이었다
그 여리고 애처로운 몸으로
넓은 바다를 눈부시게 누볐던
너는 아직 내 안에서 희망이 되어
슬프도록 파닥거리고 있다

 

 

‘징소리’, ‘타오르는 강’, ‘그리움은 뒤에서 온다’ 등 유명 소설로 잘 알려진 소설가다. 그 작가가 2017년 여름에 발표한 시다. 1965년 [현대문학]에 「천재들」로 추천받아 시인으로 먼저 문단에 등단한 후, 1974년 [한국문학] 신인상에 백제 유민의 한을 그린 단편 「백제의 미소」가 당선되면서 소설가로 등단하였다. 이후 소설을 통해 1981년 소설문학 작품상, 제3회 전남문학상, 1982년 문학세계 작가상, 2004년 제13회 광주문화예술상 문학상, 2004년 [늙으신 어머니의 향기]로 제28회 이상문학상 특별상, 2006년 제23회 요산문학상, 2010년 제7회 채만식문학상 등 많은 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가들이 만년에 이르러 시를 쓰는 경우가 있다. 또한 시인들도 만년에 소설을 쓰는 경우가 더러 있다. 이렇게 장르를 크로스 하는 창작 현상. 그건 어쩌면 작가들에게 하나의 장르로는 다 채울 수 없는 문학의 허기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글을 쓰면 평생 배가 고픈 것이다.

멸치의 은빛 생의 서사가 시 한 편에 극도로 압축되어 있다. 우리 가슴에는 언제나 멸치가 크고도 넓게 끌어안고 살아가던 바다가 출렁대고 있다. 소설가가 썼기 때문인지 간결하고 담백하고 명료한 표현을 볼 수 있다. 대하소설 [토지]로 파란만장한 한국 근대사를 담아냈던 박경리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라는 시집을 냈다. 정말 그는 참으로 홀가분했던 것일까. 박식하고 달변가로 유명한 이어령 교수도 만년에 기독교 신앙에 몰두하여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라는 시집을 냈다. 그는 분명히 기독교에 깊이 심취해 있는 것 같다. 이제 문순태 시인도 초심의 시인으로 돌아가 시를 써서 생명과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그런데 왜 소설가들은 만년에 이르러 시를 쓰고 또 시집을 내는 걸까. 그것은 그들이 그동안 풀어냈던 말들을 간결하게 압축하기 위한 것이 아닐지.


김완하 한남대 국어국문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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