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학교다

김억중 한남대학교 건축학부 교수(건축가)l승인2018.06.10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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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 : 김억중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도대체 뭐 땜에 창밖만 우두커니 쳐다보고 있냐? 너, 정신 나간 놈 아냐? 나 참 원 기가 막혀. 시험이 낼 모렌데. 잘 한다. 잘 해. 아이고, 내가 미쳐요. 미쳐.” 들고 온 과일 접시를 내팽개치듯 아이 책상에 내려놓고 방을 나가시는 우리 어머님! 어느 누구의 잘못이겠습니까? 시대가 그렇고 입시제도가 하수상한 탓이지요. 염장 지르려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차분히 마음 가라앉히시고 시 몇 수 함께 읽어 보시지요.

1.
산촌에 사노라니 하는 일 없어
지팡이를 짚고서 나서는 사립
생강은 이미 새싹 자라고
근대 뿌리 바야흐로 굵어지네
집안의 벌레들은 괴이하게 굴지 마라
섬돌 아래 죽순도 억울함을 면했네
동자는 지금 독서를 게을리 하는데
자주 정원 엿보는 것 해로울 까닭이야
(김극일, 약봉선생문집, 연방세고)

2.
왕희지 놀던
소흥 난정에 가서
연못에 금어(金魚)들 헤엄치는 걸 보며
저거로군, 무릎을 치네.
그를 서성(書聖)이 되게 한 건
물고기의 몸놀림.
그리고
공중에 마음껏
서체(書體)로 만들고 있는
나뭇가지 들이니.
(정현종, ‘어떤 예술론-소흥 난정에 가서1-’)
 
3.
언제나 그 집이 그립습니다.
대청마루 한 켠에서 들려오던 엄마의 다듬이질 소리가
혀를 끌끌 차시면서도 끝까지 신문을 읽어 내리시던 아버지
토닥토닥 싸우면서도 동생과 함께 듣던 모차르트, 브람스, 차이
코프스키의 비창이, 김민기의 노래가
뭐든지 숨길 수 있고 그 속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 지 타인들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하던 집이,
집안의 집이,
우리 집이 그립습니다

그 집에서 나는 삶의 계율을 익혔습니다
동그랗게 깎인 사과의 심장을 맛보았습니다
불가사의한 가족의 현, 그 나긋나긋한 갈등들을 호흡했습니다
평탄하지 않았지만
사방으로 난 창문 밖으론 하늘이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그대로 보였습니다
마당 한 모퉁이의 깊은 우물 속의 질투를 이끼 냄새가
벽돌 하나하나에 스며들어
냄새만으로도 세월의 굴곡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집이었습니다
(김상미 시인의 '그 집' 일부)

4.
화려한 건물과 방은 영주나 부자를 위한 것이다. 그런 곳에서 살고 있으면 마음이 안정되고 만족스러워져 더 이상을 바라지 않게 된다. 그런 것은 내 성격에 전혀 맞 않는다. 카를스바트에 갖고 있는 것과 같은 호화로운 주택에 있으면 나는 곧 게을러져 일을 하지 않게 된다. 지금 살고 잇는 이런 검소한 곳처럼 좀 어지러운 가운데 정돈되어 있으며 집시풍의 소박한 집이 내게 적합하다. 이런 집이 있으면 활력이 생기며 나 자신에게서 무엇인가를 창조해 낼 수 있는 완전한 자유를 얻게 된다.
(괴테, ‘나의 집’) 

어머님! 좀 기분이 삭혀지셨는지요? 그 옛날에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자식 과거에 내보내어 출세시키려 모두들 난리 아니었겠습니까? 그러니 부모가 보기에 한심한 동자들이 얼마나 많았겠어요? 하지만 세상 돌아가는 이치는 늘 간단합니다. 무엇이든 제 스스로 하기 달렸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댁의 아이들 그만 좀 족치세요. 괜한 감정 상해서 아이들과 관계만 나빠지십니다. 해보셔서 잘 아시겠지만 아이들 스스로 알아서 하기 전에는 세상없어도 참 공부라 할 수 없지 않습니까?
좀 엉뚱하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어머님이 진짜 관심을 가지셔야 할 대목은 아이들이 보고 느끼고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는 주거환경입니다. 기왕이면 마당도 있고, 작은 정원도 달린 그런 집말입니다. 달리 그래서가 아니라, 집이 바로 학교거든요. 그것도 수업료가 하나도 없는.


김억중 한남대학교 건축학부 교수(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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