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랜드가 따로 없다

김억중 한남대학교 건축학부 교수(건축가)l승인2019.07.06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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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entation de St Antoine 일부 – Jerome Bosch

프라도 미술관에 갔을 때 가장 충격적인 만남으로 기억되었던 화가는 단연 제롬 보쉬(Jerome Bosch, 1450-1516)였다. 나는 그의 그림을 보면서 그야말로 뼛속 깊숙이 자유로운 영혼을 지녔을 뿐 아니라 태생이 ‘놀이를 즐기는 인간(Homo Ludens)’이라는 사실을 금세 알아챘다. 그 중에서도 ‘성 안토니오의 유혹’ 이라는 그림에 나오는 집 모습은 참으로 충격적이었다. 그림 오른편에 위치한 집을 보면 성인의 얼굴을 한 모습의 지붕이 씌워져 있고 집 대문 앞에서 묘령의 아가씨로 보이는 이가 왼편 안토니오 성인을 들어오라고 손을 벌려 유혹하고 있는 장면이다. 그 주변으로 물고기, 혹은 알 수 없는 모양의 비행물체 위에 사람이 타고 날아다니는 모습들은 당시로서는 상상키조차 어려운 장면들이었을 것이다.

그림 왼편에 제목 그대로 세속의 온갖 유혹과 싸우는 성인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보아, 오른편에 어쩌면 자신을 꼭 닮게 그린 집을 중심으로 신명나게 노는 것 자체가 그에겐 커다란 유혹이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눈으로 보아도 생소할 만큼 전대미문의 광경들이 규칙을 잘 알 수 없는 온갖 종류의 놀이처럼 위 아래로 분주하게 펼쳐지고 있다. 하지만, 주제와 전혀 관계없이도 구석구석 디테일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퍼즐 맞추듯 무슨 게임인지 궁금해져 여간 흥미로운 것이 아니다. 집은 홍수로 불어난 물위로 떠내려가는 건지 아니면 물 위에 정박된 배처럼 띄워놓은 집인지는 잘 알 수 없지만 집은 거주 기능이 주목적이기 이전에 수영장을 둔 놀이터나 다름없다. 두 인물의 얼굴이 닮은 것으로 보아 주인공은 물론 안토니오 성인일 것으로 보이는데, 물을 사이에 두고 다른 곳을 바라다보는 두 인물의 표정이 대조적이다.

하지만 오관이 흐릿한데다 굳게 닫힌 마음 상태로 그림을 보면 화폭에 그려진 순간에만 매몰되어 이쪽과 저쪽을 너무 확연하게 구별하기 쉽다. 왜 이쪽과 저쪽을 선과 악, 성과 속의 이분법적인 구도로 보아야만 하겠는가? 안토니오 성인이 이쪽이나 저쪽이나 그 어디에 있든 유혹은 늘 도처에 있을 터인데 말이다. 그러므로 물위의 집은 성인이 경건하게 기거할만한 사원인 동시에 유머와 해학이 깃든 흥미진진한 디즈니랜드라고 해석하는 편이 더 옳다고 본다. 집은 그런 점에서 그 둘 사이 경계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심맹(心盲)을 벗어나는 길이 아닌가 한다. 나는 이 대목의 해석이 서령 무식하리만치 심각한 오독(誤讀)이라 하더라도 그냥 내식대로 읽고 싶은 오기가 발동하고 있음을 감출 수 없다. 세상에 집이 청정도량인 동시에 디즈니랜드라는데, 이 보다 더 발칙한 발상과 뒤따를 감동과 재미가 어디 있을 수 있을까 싶기 때문이다.

놀라운 것은 우리 모두 어린 시절을 추억해보면 집 자체가 곧 정화수 떠놓고 기도하던 경당이요, 생긴 것대로 놀이터 아닌 곳이 없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보쉬라는 화가가 일침을 놓듯 정신을 일깨워줬다는 점에 있지 않을까 싶다. 나는 지금도 안토니오 성인이 되어 그림 속을 헤매며 저 건너편으로 건너가 집 주변을 배회하며 실컷 놀고 싶다. 그리고 그 집에서 하루 종일 삼종기도를 바치며 몸과 마음을 평안 속에 다스리면 좋겠다. 나는 그렇게 기꺼이 놀면서 성과 속을 넘나들고 싶다. 집은 비록 저자거리에 있어도 사원인 동시에 놀이터일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억중 한남대학교 건축학부 교수(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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