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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억중 교수 삽화 |
요즘 들어 생태건축(ecological architecture)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가고 있다. 20세기 인류가 저질러온 지구 환경의 오염과 무자비한 에너지원 낭비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청준의 "목수의 집“에서 주인공 최노인이 보여주는 목조주택에 대한 애착은 그의 자연 친화적인 세계관과 무관치 않다.
“그는 나무엔 나무의 순결과 혼이 있고, 그런 나무의 기운은 원래 햇빛과 땅기운과 비바람을 함께 안고 화동하던 것이라, 사람의 기운이 함께 화응하고 충만해야 할 집을 짓는 데에는 나무의 재질이 앞설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그는 평생 그 나무의 성질이나 쓸모에 따라 어느 한 곳 소홀함이 없이 햇빛과 지기와 풍우를 잘 아우르는 편안한 목조 집만을 고집해온 것이었다.”(이청준, 목수의 집)
최 노인은 목수로서 자신이 지은 남의 집을 자기 집처럼 생각하며 고집스런 삶을 살아간다. 그는 나무의 성질이나 쓸모에 따라 ‘그 자리에 그런 모습’으로 다룰 줄 알았으므로 그가 지은 집은 뒤틀리거나 어색함이 없다. 목재만을 고집하는 이유는 그가 이룩해낸 노련한 기술과 눈썰미나 오랜 경험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목재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지기는 물론 온도와 습도에 잘 적응하여 사람을 편안하게 할 뿐 아니라, 집을 짓기 위해 흙, 풀과 함께 자연에서 구했으니 이들이 썩으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믿음 때문이다.
목조 주택과 달리 콘크리트 집은 어떠한가? 아닌 게 아니라 집 지을 때 썼던 철근 콘크리트 더미가 처치 곤란한 쓰레기가 되어 나오는 것을 보면 가슴 아픈 일이다. 특히나 철근 콘크리트는 비인간적이며 삭막하다는 이유로 만인에 의해 지탄을 받고 있는 재료 중에 하나다. 그렇다고, 복잡한 사회적 요구를 목조 집만으로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를테면 도심 속에 3층 이상 빌딩을 지어야 할 경우, 고가의 시공비용은 물론, 목재를 주구조체로 쓰기에는 재료 속성상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목재가 아니더라도 기왕에 쓸 수밖에 없는 재료들이라면 적재적소에 제대로 써서 유효기간을 늘려 과잉소비를 억제하고 재활용을 통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수밖에 없다. 본질적인 문제는 재료에 있지 않고 그 재료를 쓰는 이의 환경에 대한 가치관에 있다.
어떠한 재료를 쓰든 자연 환경에 순응하는 방식으로 적절하게 쓰는 것이 소중한 것이지, 흙집이나 황토벽돌집, 통나무집을 짓는다고 모두가 생태건축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저 푸른 초원 위의 그림 같은 집이라 하더라도 대지의 순리에 적응하지 못하면 모두가 허사로운 일이다. 특정 재료에 대한 낭만적인 취향과 필요 이상의 집착을 지니는 것은 금물이다. ‘콘크리트는 무조건 나쁘다’는 식으로 재료 자체에 원죄가 있는 듯 몰아 부치는 것은 오히려 그 재료를 잘 못 쓰는 사람에게 면죄부를 줄뿐이다. 값비싼 재료를 썼다고 해서 좋은 집, 아름다운 집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저렴한 재료를 썼다고 해서 집이 천박해질 것이라는 생각도 지레짐작이요 편견에 불과하다. 어떤 재료를 썼던 그 속성에 잘 맞도록 표현하였는지를 탓할 일이다.
모두가 좋지 못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경량 철골조에 샌드위치 패널로 시공되는 조립식 건물도 마찬가지다. 건축비용이 저렴하다는 이유로 시골 곳곳에 형형색색의 알록달록한 집들이 늘어가고 있다. 짙은 색깔로 자연에 위해를 가하는 모습을 보면 슬픈 일이다. 그렇다고 수요 자체를 나무랄 수만은 없다. 오히려 집 짓는 이들은 마음을 꾸짖어야 한다. 임시방편이려니 생각하며 조립식 집을 제대로 된 집으로 생각하지 않는 더 커다란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그러하니, 아무렇게나 막 짓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조립식 집은 천박해도 괜찮으며, 그럴 수밖에 없다는 인상을 씻을 수 없다. 마음만 잘 먹고, 재료를 잘 쓰면 조립식 집도 얼마든지 훌륭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나의 경우, 시골에 들어가 산 지 올해로 18년째. 마을까지 들어오는 길이 좁아 조립식이외는 다른 방법으로 집을 짓기가 어려웠다. 기왕 조립식으로 지을 바엔, ‘조립식 집은 천박하다’는 세간의 고정관념을 뒤흔들어 보고 싶었다. 빗소리가 타악기 연주처럼 투명하게 들려오는 깡통 집에서 행복하게 잘 살아가고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거니와 ‘그 자리, 그 집’에 맞는 재료와 기술인가가 문제의 핵심이다.
김억중 한남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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