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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억중 교수 삽화 |
지금 창밖에 비가 오시거든 날궂이 좀 하시면 어떨지요. 어렸을 적에 재고 자시고 할 것 없이 비만 오면 뛰쳐나갔던 기억 하나면 충분하지 않나요? 까짓 장난이야 집 안팎 어디서든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빗물보기를 미물 들여다보듯 가만히 지켜보아도 좋고, 빗소릴랑 정신 나간 푼수 청승떨 듯 귓불에 대고 들어도 좋고, 괜시리 마음마저 짠해지면 빗물 젖은 과거를 훌쩍 걷어서 행주처럼 쥐어짜도 좋고, 그도 아니면 비 사이로 냅다 뛰다 도리어 비 좀 실컷 맞으면 또 어떻습니까? 댁이나 나나 모두 삭신 쑤신 방안 샛님 아니었던가요? 말이야 바른 말이지, 놀고 싶어도 누가 멍석이라도 깔아주었어야 말이지요.
어쨌거나 빗물, 그 매력 있는 소재 하나만으로도 심오한 철학에 이를 수 있고 진지한 문학에 다다를 수 있으니, 일단 놀고 볼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비오는 날 집 좀 데리고 좀 놀아보시지요. 집이 너무 심심하답니다. 집이 그럽디다. 비오는 날은 좀부터 쑤신다고.
성님, 모든게 젖습니다.
아침마다
국립묘지를 다녀오시는 옆집
할아버지의 보건체조가 젖고
또 하루를 공친, 지하철 공사장 아저씨들의
담배연기가
선술집에서 젖고
보증금을 20만원씩이나 넣은
내 사글세 방 앞에 심어 논
호박잎이 젖고, 그 뒤로
아무렇게나 버려진 공터의
풀잎이 젖고
옆방 아저씨의 청승맞은 유행가도
따라 젖고, 젖다가는
한강물도 제법 뽀얀 물보라를 튀기면서
젖어 갑니다.
...........
(윤중호, ‘본동에 내리는 비’ 일부)
초등학교 5학년 때던가요. 비가 오던 날 진흙에 미끄러져 다리를 크게 뼜었지요. 기브스 한 채 학교를 가지 않아서 너무도 행복했던 날들이 거의 한 달 반이나 되었습니다. 숙제를 전해주러 왔던 친구들도 은근히 부러워하는 눈치였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행복의 느낌이 더했습니다. 추적추적 비는 오는데, 따뜻한 방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어머니께서 쪄다주신 옥수수를 알알이 떼어먹으면서 나는 기원했지요. 다리 삔 채 이대로 그냥 살아갈 수 있기를. 불가능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되도록 오래오래 그 느낌을 즐겼습니다. 처마 끝으로 빗물은 하얀 포말을 이루어 마치 물로 된 담벼락을 쌓았고, 그럴수록 나는 집 속 깊숙이 더 큰 안온함에 젖어들었습니다. 아! 나는 잊을 수 없습니다. 그 비오는 날의 평화와 고요를.
김억중 한남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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