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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홍도의 '지장기마도' |
술은 낭만이고 멋이다. 술 못하면 남자 축에도 끼지 못하던 시절이 있지 않았던가. 여북했으면 유명인사 프로필에 두주불사가 단골메뉴였을까. 과거에는 그랬지만 멋과 풍류에 반하는 명정기(酩酊記)도 수두룩하다. 전날 끊긴 ‘필름’의 추태 잔상을 부여잡고 머리를 쥐어뜯는 호주가들의 행태 말이다.
그런데 단원 김홍도(1745-1806)는 어쩌자고 두보의 음중팔선가 첫 구절의 주인공인 하지장의 추태를 묘사한 ‘지장기마도(1804)’를 그렸을까. 음중팔선은 당나라 때 술과 시를 사랑했던 여덟 시인을 일컫는다.
하지장의 술버릇은 가관이다. 말을 탔는데 배를 타고 있는 듯 흔들거리고, 취중에 길을 가다가 우물에 빠졌는데 그대로 잠들어버리는 대책없는 주태백(知章騎馬似乘船, 眼花落井水底眠)이라고 화제가 설명한다. 과장이 심하지만 주구장창 술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은 무슨 뜻인지 다 안다.
그림에서 술 냄새가 풀풀 나지만 수준급이다. 서와 화의 조화가 일품이다. 화성 단원의 솜씨인데 탓할게 무엇인가. 술 실력으로 견줘도 당나라 음중팔선 못지않다. 단원이란 번듯한 호를 놔두고 취화사(醉畵士)라고 한 속내가 이를 말해준다.
취필을 휘둘렀다. 격이 떨어지면 흠 잡힐까봐 눈을 치켜뜨고 손에 힘을 모아 쥐고 크로키하듯 그렸다. 작품 감상의 묘미는 여기에 있다. 화성의 자존심이 발동한 나머지 하지장처럼 술에 절었어도 빈틈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취필은 그림의 왼쪽 글이 증명한다. 갑자년(1804) 동지가 지난 후 단구(단원)가 화원이자 친구인 박유성의 집 서묵재(丹邱寫宇瑞墨齎)에서 그렸다고 명기돼 있다. 세모에 친구들과 어울려 술이 몇 순배 돈후 취기를 빌려 그렸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그림 속 말 탄 주인공은 홍조 띤 얼굴의 하지장을 빌려 단원 자신이란 점도 은근히 내비치고 있다.
술의 힘을 빌린 말과 행동은 시대의 세태를 반영한다. 하지장 시대에는 용인됐어도 요즘은 설화를 입거나 손가락질 받기 십상이다. 예나 지금이나 술 인심은 후하다. 모처럼 만난 친구들과 적당하게 하는 한 잔 술은 대화를 윤택하게 하는 윤활유다. 지나치지 않으면 말이다. 하지만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술이 술을 마시기 마련이다. 하지장과 단원이 살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애주가들이 점점 늘고 있다. 생활이 고달프고 정치인들 하는 꼬락서니가 술 권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아닌지.
변상섭 충남문화재단 문화사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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