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의 집

김억중 한남대 건축학부교수l승인2016.08.19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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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억중 교수 삽화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 하지 않는가? 잘 생기고 말 잘하고 글 잘 쓴들, 판단만큼 소중할까? 자칫 생각과 판단이 모자라 집이 사람을 사람답게 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억압한다면 집을 지어야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집을 잘 지어보려는 열망이 어설픈 불발로 끝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도 사유의 집부터 잘 지어야 한다. 대지 위에 생각을 짓는 것 ! 그것이 건축의 기본이요 출발이다.

그렇다. 끝내 피다만 꽃은 추레하다. 마찬가지로 사유와 언어가 자연스럽게 한 몸을 이루지 못한 집이라면, 아물지 못한 상처가 그대로 드러나 보여 가련하기 그지없다. 이렇다 할 사유는 담고 있지 못하나 그럴듯한 언어의 옷을 입고 있는 집이 그런가 하면, 현란한 사유는 있으되 적절한 언어로 표현되지 않은 집이 바로 그러하다. 그런 집은 자연스럽지 못하고 왠지 거북하다. 만일 사유와 언어가 일치하지 않는다면, 생각은 궤변이요 형태는 유희로 전락하여 껍데기 건축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그 자리, 그런 집’을 지으려면 ‘사유의 집’에서 ‘언어의 집’을 끊임없이 오가며, 매순간 무엇이 올바른 선택인 지 고민하며 괴로워할 수밖에 없다. 안으로부터 상처를 뚫고 꽃을 피우듯, 그 인고의 기다림 속에 사유에서 언어로 가는 과정을 설계 또는 디자인이라 한다. 설계 과정이란 어쩌면 정진규 시인이 말하는 것처럼 꽃을 피우는 순서와 닮지 않았을까 싶다.

".....꽃이 피는 순서는 밖에서 안이 아니다. 고마우신 햇살과 단비도 있으셨겠지만 안에서 밖이다. 일단은 고여서 밖이다. 눈으로도 그대로 볼 수가 있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는 것이 되는 빠듯한 충만의 순서 ! 나는 그걸 아직 믿고 있다. 상처가 꽃이 되는 순서 ! 그걸 아직 믿고 있다.“(정진규, 몸시)

시인은 말한다. 꽃이란 안에서 밖으로 피는 것이라고. 그 속내의 상처가 절정에 다다라 밖으로 피어 오른 꽃을 보면, 무형의 사유가 침묵의 언어로 바뀌는 신비를 알 수 있다. 상처가 꽃이 되는 순서가 있듯, 깊은 사유와 영혼이 깃들어 있는 집도 내밀한 태생의 과정이 있기 마련이다.

보이지 않는 것에서 보이는 것으로의 변모.
잴 수 없는 것에서 잴 수 있는 것으로의 진화.
보편적인 것에서 개별적인 것으로의 좁힘.
이(理)에서 기(氣)로의 발산.

생각은 형체가 없으므로, 사유의 집은 눈으로 보이지 않으며, 잴 수도 없다. 아이디어는 누구든 공유할 수 있는 것이므로, 사유의 집은 보편적인 세계요, 응결된 이(理)의 세계다. 잘 구축된 사유의 집은 형태와 공간이라는 <언어의 집>을 빌어 그 형체를 밖으로 드러낸다. 언어의 집은 물리적인 구조물이므로 볼 수 있는 존재이며, 크기를 잴 수 있는 실재다. 언어의 집은 생각을 구체화할 수 있는 수많은 가능성 중에 하나만을 선택한 것이므로 개별적인 세계요, 용해된 기(氣)의 세계다. 상처에서 꽃이 피기까지의 순서! 그것이 바로 참다운 설계과정이 아니고 무엇인가.


김억중 한남대 건축학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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