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의 '플럼꽃이 피는 나무'

변상섭 충남문화재단 문화사업팀장l승인2016.08.31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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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센트 반 고흐의 '플럼꽃이 피는 나무'

19세기 프랑스 화단에 일본 목판화인 ‘우키요에 신드롬’이 번졌었다. 인상파 화가들이 우키요에(浮世)에 홀딱 빠진 것이다. 모방 수준을 넘어 아예 그대로 베낀 작품이 수두룩하다. 예술가의 고고한 자존심도 내던졌다. 혹자는 ‘벤치마킹’이라고 거들지만 궁색한 변명일 뿐이다. 평가야 어찌됐든 일본의 문화 아이콘이 이렇게 해서 인상주의 회화사에 자리를 잡게 됐다.

우키요에 맹신자 중 으뜸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다. ‘플럼꽃이 피는 나무(1887)’가 그 대표작이다. 막부시대 판화 대가인 안도 히로시게의 ‘가메이도 매화’를 그대로 옮겨 놓은 거나 다름이 없다. 구도까지 비슷해 언뜻 보면 같은 작품으로 착각하기 십상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림 테두리에 한자를 어설프게 그려(?) 넣은 점과 벚꽃을 플럼꽃으로 환치한 게 전부다. 인터넷 상에 두 작품이 쌍으로 떠다니니 누구나 맘만 먹으면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고흐의 우키요에 집착은 이뿐만이 아니다. ‘비 내리는 다리’는 히로시게의 ‘아케다 다리에 내리는 소나기’를 같은 기법으로 베낀 것이다. ‘탕기영감의 초상’ 배경은 온통 우키요에로 장식되어 있을 정도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에 일본 판화 400여점이 소장돼 있다고 한다. 우키요에 신드롬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우키요에가 유럽에 파급된 것은 일본의 개항과 함께 교역량이 늘면서다. 수출하는 도자기 포장 재료로 우키요에를 사용했다고 한다. 가부키 배우와 기생, 명승지 등이 주는 이국적인 정취와 강렬한 색감이 인상주의 화가들의 눈을 단박에 사로잡은 것이다. 당시 유럽에 자포니즘 열풍을 촉발하는 촉매제 역할도 우키요에가 했다고 볼 수 있다.

우키요에는 일본 서민 계층에서 유행한 풍속화다. 우리 민화와 여러 면에서 닮아 있다. 우키요에를 민화와 견주어 보자. 문화예술도 소비가 왕성해야 융성한다. 일본은 판화를 포장재로 사용할 정도로 소비가 활발했다. 일본인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벽에 우키요에 걸기를 즐겨한다. 일식집에 걸린 그림도 그 연장선이다. 일본의 문화 코드로 자리를 잡았다.

민화도 그런 적이 있었다. 권문세가는 화가를 집안에 초대해 놓고 방마다 민화로 장식했었다. 권문세가의 집안 치장을 하던 민화는 이제 고급 예술품 대접을 받고는 있지만 생활예술로 자리를 잡지는 못했다. 취미 정도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일본의 문화 코드로 자리 잡은 우키요에가 우리 민화가 다른 점이다. 당장에 민화가 우키요에처럼 되기를 희망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오늘날 생활예술을 유별나게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변상섭 충남문화재단 문화사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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