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소파

김완하 한남대 국어국문창작학과 교수(시인)l승인2017.01.2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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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소파                       윤영숙(1948~ )

 

거실 한가운데 턱 하니 자리 잡고 앉은 빨간 소파
등받이가 낡아서 군데군데 껍질이 벗겨져 나온 것이
마치 늙은이 얼굴에 검버섯 같아
지나온 세월 피어 있는 상처 같은 의자 보면
마음이 심란하다

그는 이 늙은 의자 좋아해
TV를 보거나, 신문을 읽을 때나
자기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다

때로 이 낡은 의자에 앉아 졸고 있는
그의 처량한 모습을 바라보면
마음이 서글퍼진다

새 것으로 바꾸자고 권해도
꿈적도 하지 않는다

마침 그가 여행 중인 때
일 년에 두 번, 못 쓰는 가구 버릴 수 있는 날
절호의 기회 놓칠세라
끙끙대며 굴려서 밖으로 내다 놓았다

바꿀 수도 버릴 수도 없는 그 사람 대신
낡은 소파를 버리고 나니
집안이 훤해지고 넓어졌다
덩달아 내 마음도 후련해 졌다

 

소파도 시간이 지나면 사람과 함께 늙어간다. 등받이는 낡고 껍질이 벗겨지고 여기저기 검버섯도 번지고. 그렇게 함께 늙어온 소파에 몸을 기댄 그는 늘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것은 이미 그와 하나가 되고 그의 몸 일부가 된 것이라 하겠다. 그것을 버렸으면 하는 시인과 그것을 사수하려는 사내의 의지가 충돌하는 지점. 거기에는 서로에 대한 연민의 정이 스미어 있는 것이다. 사물도 함께 시간을 더하다 보면 정이 생기고 함부로 버리기란 대단히 어려운 법이니. 그걸 굳이 앤틱이다 빈티지다 하여 새로운 미적 가치로 포장하지 않더라도 그들에게는 생을 함께 해온 둘만의 내밀한 눈빛으로 소통하고 있는 것.

그는 빨간 색의 낡은 소파에 몸을 웅크리고 신문도 보고 TV도 보다가 또 자주 졸기도 하면서 많은 시간을 소파에 담겨 있는지 모른다. 그 사이에 햇빛은 잠시 머물다 가고 그늘이 드리워지겠지. 그가 여행으로 집을 비운 날 드디어 시인은 그 소파를 밖으로 옮겨 내다 버린다. 소파를 버려서 그의 나이든 모습과 무기력한 삶을 비워버리고 싶은 것. 시인에게 낡은 소파는 바로 노쇠한 사내의 분신. 이 시의 심장은 다음에 있다.

▲ 김완하 교수

'바꿀 수도 버릴 수도 없는 그 사람 대신 / 낡은 소파를 버리고 나니 / 집안이 훤해지고 넓어졌다'는 이 3행.

그러나 묵은 솔이 광 솔이라 하지 않던가. 낡은 소파가 치워져 그것이 차지했던 공간은 비워져 훤해 보이겠지만, 그의 생을 편안히 받쳐주며 반질반질 닳아 있던 소파는 빛나는 시간과 함께 떠나간 것이니. 그 공간을 채워주던 묵직한 침묵의 아우라는 영원히 사라지고 만 것이다.


김완하 한남대 국어국문창작학과 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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