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 이야기>백제 의자왕 묘 찾기

박기성 기자l승인2017.01.30 17:31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 망산 고분군

충남 부여군(군수 이용우)은 최근 ‘의자왕과 백제유민의 낙양행로’라는 책자를 발간했다.

부여군은 백제유민 흔적 찾기사업으로 의자왕과 백제유민의 낙양 행로를 재조명하는 조사를 실시하고, 조사과정에서 의자왕 묘로 추정되는 능묘 1기를 확인했음을 밝힌 책자이다.

이 조사는 (재)백제고도문화재단에 의뢰해 지난해 연말 완료됐으며, 고대 한·중간 해상교통로와 중국 당대 내륙교통로 조사연구를 통해 백제 31대 의자왕의 뤄양(洛陽)까지의 행로를 밝히는 한편 중국 뤄양 (북)망산의 백제 및 고구려의 묘역으로 추정되는 장소에서 백제인의 능묘가 있음을 최초로 확인하는 성과를 얻었다는 것이 부여군의 주장이다.

또한 조사과정에서 중국 뤄양시 문물고고연구원에 따르면 이 능묘는 뤄양시 맹진현 봉황대촌에서 북쪽으로 1km 떨어진 지점에, 높이는 7m 내외의 봉토분으로 이 일대는 백제인의 묘역으로 추정되며 토양채취조사 결과 층위가 의자왕 서거 시기와 일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여군은 이 묘역에 대한 상세한 조사결과는 향후 공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백제 의자왕 묘 찾기는 부여군이 지난 1996년 중국 뤄양과 문화교류 자매결연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전개돼왔다.

그러나 지난 2002년 중국측은 동북공정(東北工程 : 중국의 국경 안에서 전개된 모든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하려는 연구 프로젝트) 이후 여론 등을 의식, 한국인들의 답사조차도 제한해왔었다.

뿐만 아니라 한국 관련 유물들을 한국인에게 보여주는 것조차 꺼려해 왔던 것이 현실이었다.

게다가 망산은 정주(鄭州)에서 뤄양으로 이어지는 100km 이상의 낮은 구릉지대를 형성, 이처럼 넓은 곳에서 의자왕의 묘를 찾기란 우물에서 바늘 찾기나 매한가지인 셈이다.

특히 망산은 중국에서 가장 많은 고분군이 집중돼 있다는 점에서도 발굴이 쉽지 않은 실정이다.

부여군에서 의자왕 묘를 꾸준히 찾아 나섰지만 위치조차 파악하지 못했으며 그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망산이 너무 방대하다는 것이다.

부여군 이외에도 계룡건설의 계룡장학회 역시 백제의 옛 흔적 찾기에 관심을 갖고 있다.

지난 2004년 11월 계룡장학회 관계자들과 역사학자 등이 망산을 찾은 바 있으나 별다른 성과 없이 되돌아섰던 것도 망산의 방대함 때문이다.

중국 허난(河南)성 뤄양시 문물당국은 지난 2003년 10월부터 3년에 걸쳐 망산 고분문물 전면조사 작업을 통해 700여기의 고분을 조사.측정한 바 있다.

망산에 이처럼 많은 고분이 산재해있는 것은 중국 역사상 13개 왕조가 뤄양에 도읍을 정했던 사실에 기인하고 있다.

의자왕의 아들 융의 지석(가로 56.8㎝,세로 57.8㎝)은 지난 1928년 뤄양시 망산 청선리(淸善里)에서 출토돼 중국 허난성 개봉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현재 밝혀진 묘지명에는 부여융(扶餘隆) 묘지를 비롯해 흑치상지(黑齒常之) 묘지와 그의 아들 흑치준(黑齒俊) 묘지 등 일부에 불과하다.

당 고종은 의자왕이 죽은 뒤 조서를 내려 삼국시대 오나라의 마지막 왕인 손호와 남조 진나라의 마지막 왕인 진숙보의 묘 옆에 장사하도록 명했다는 것이다. 즉 뤄양 망산에 묻힌 것이다.

학계에서는 의자왕의 묘가 바로 지금의 봉황대 일대에 존재할 것이라 추정해 왔다.

▲ 의자왕과 백제유민의 낙양 행로 책자 표지

최근 부여군이 밝힌 것처럼 뤄양시 맹진현 봉황대촌에서 북쪽으로 1km 떨어진 지점에, 높이 7m 내외의 봉토분의 백제인 능묘가 있음을 최초로 확인했다는 점은 오랫동안 추진해온 의자왕 흔적 찾기의 새로운 결실로 기대되는 바가 사뭇 크다.

그러나 중국측의 동북공정 등을 감안해볼 때 결정적인 흔적을 발견했다하더라도 쉽게 속을 들여다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게다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문제를 둘러싸고 갈수록 냉각돼 가는 한·중관계를 보더라도 더더욱 그러하다.

이와 관련, 부여군 문화재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묘역에 대한 상세한 조사결과는 향후 언제 공표하게 될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중국내에 있는 백제인들의 유적을 하나라도 더 찾아내기 위해서는 보다 지속적이고 연계성 있는 발굴과 중국측 관련 학계와의 원만한 유대관계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한편 부여군은 지난 2000년 의자왕과 부여융 부자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가묘와 제단을 설치했다.

특히 뤄양시로부터 기증받은 부여융 묘지석 복제품도 함께 안치했다. 부여읍 능산리 고분군 안에 설치된 가묘에는 망산에서 출토된 부여융 지석을 탁본해 실제 크기로 만들어 안치했다.


박기성 기자  happydaym@hanmail.net
<저작권자 © 미디어대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기성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기사 댓글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최대 400byte

숫자를 입력해주세요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ㆍ기사제보ㆍ광고문의ㆍ불편신고ㆍ개인정보취급방침ㆍ청소년보호정책ㆍ이메일무단수집거부
대전광역시 유성구 대학로 27 현대리조텔 1309호
대표전화 : 010-5455-4311  |   등록번호 : 대전 아 00225  |  등록년월일 : 2015. 4. 10  |  발행인·편집인 : 박기성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기성
Copyright ©2015미디어대전.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