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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억중 교수 일러스트 |
집을 짓는다는 것. 그것은 땅에 새겨진 ‘지금, 여기’의 가치를 살려 천국으로 만드는 일이요, 세상과 우주의 중심을 자처하는 일이 아닌가. 그 뜻을 그대로 담아 설계했던 집이 바로 어사재(於斯齋)였다. 집주인은 고향에 돌아와 농사를 지으며 한동안 소원했던 일가친척들과 더불어 아옹다옹 행복한 노후의 삶을 염원하여 집을 짓고자했다. 참으로 놀라웠던 것은 약사 이력 30년 동안 몸소 깨달았다는 집에 대한 생각이었다. 요컨대 집과 몸이 하나이니, 집이 곧 보약이라는.
그저 집보다 더 좋은 보약은 없노라
깎아지른 한 말씀에 숨이 멎다
그 좋은 약 좀 지으러 예까지 왔노라
화안한 웃음에 가슴 뛰다
짓는 이들이 모였으니 집 한 채 다 졌노라
일렁이는 바람결에 약내 번지다
[졸시, 어사재 송]
내가 할 일은 결국 집주인에게 보약이나 다름없는 집을 지어드려야 하는 것이었으니, 두고두고 음복할만한 행복 처방전은 대략 이러 했다.
첫째는 서기(瑞氣). 고속도로 소음과 매서운 북서풍에 노출된 당초의 집터를 남향 언덕 아래 안온한 곳으로 옮겼다. 집주인의 몸과 마음의 평안을 위해서는 집안 구석구석 태양의 운행과 더불어 빛과 그림자, 그리고 온기와 한기를 잘 다스릴 수 있어야하기 때문이었다.
둘째는 군생(群生). 귀촌생활 최고의 난제는 이웃과의 불화 아닌가. 나는 경사진 땅의 형세를 이용해 맨 아래층에 동네 분들이 오고 가다 막걸리로 목을 축일 수 있도록 넉넉한 대청마루를 배치했다. 마루 옆에 내키기만 하면 언제든 국수라도 한 그릇 말아 드릴 수 있도록 부엌을 두었다. 집의 일부가 마을 사랑방이 되었으니 집주인이 먼저 손을 내밀어 마을 사람들과 끈끈한 인연으로 거듭날 수 있겠다는 바램이 어사재의 벽이요, 기둥이요 골조였다.
셋째는 요수(樂水). 본래 물이 귀한 땅인지라 2,3층 지붕 우수를 한곳에 모아 흘러내려 가둘 수 있도록 대청마루 옆에 제법 커다란 수반을 배치하였다. 이로써 농수에 대한 스트레스를 해소했을 뿐만 아니라 빗물이 폭포처럼 떨어지는 소리는 물론 그 모습 또한 장관이어서 마루에서 보고 즐길만한 정취가 되도록 하였다.
넷째는 여흥(餘興). 집주인 내외의 호젓한 삶을 위해서도 2층에 마당과 테라스를 두어 바깥세상을 진드근히 관조할 수 있도록 트인 시야를 확보하였고, 게서 잘 읽은 포도주 한 잔에 세월의 진한 향내를 음미하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졌다.
다섯째는 고회(高會). 추사 선생께서 “고회부처아녀손(高會夫妻兒女孫)”이라 했듯이 최고의 모임은 피붙이들의 만남이 아닌가. 하여 외지에 나간 자녀들이나 친구, 친척들이 찾아와 서로 방해하지 않고 기거할 수 있는 별채를 거실 옆에 두어 더불어 지낼 수 있는 잉여 공간을 또 하나 마련하였다. 당장은 매일 쓰지 않으니 쓸모없는 공간이라 할 지 모르겠으나, ‘마음으로 쓰는 방’을 두었으니, 각박하지 않은 집주인의 심성을 어찌 섣부른 계산으로 그 시비를 논할 수 있겠는가.
여섯째는 독락(獨樂). 고령화 시대, 그 기나긴 노후의 삶을 위해서는 홀로 즐길 줄 아는 훈련이 각별하거니와, 영혼의 깊은 우물을 비쳐보고자 하는 내심이 일면 3층 다실로 향하여 속세와 절연에 들 수도 있게 했다. 한편으로는 집주인의 취향을 살려 화초 가꾸기를 벗 삼아 심성을 온유하게 보살필 만한 온실을 두어 자주 왕래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처럼 집 안팎은 투명하게 열리고 닫히며, 마당이 저마다 성격을 달리하며 미세하게 분화되어 있고 처마 속 깊은 공간이 곳곳에 배어있으니, 비록 외형은 현대식이지만 공간구조로 치자면 한옥의 정신이 여지없이 녹아있는 집이 되었다. 그리하여 가는 곳마다 “지금, 여기”가 천국이니 그 뜻을 담은 어사재(於斯齋)를 당호로 삼는 것이 여러모로 합당하다 여겼다. 집주인께서는 치성을 드려 보약을 장복하듯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다스리고 집 주변 풍광을 심친(心親)으로 즐기며 집과 더불어 오래오래 해로하시길 기원하는 바이다.
김억중 한남대학교 건축학부 교수(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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