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놀이터

김억중 한남대학교 건축학부 교수(건축가)l승인2017.07.09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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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 김억중 교수

어린 시절 학교를 파하고 난 뒤 책가방을 집어던진 채로 우리 모두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뛰어 놀기 일쑤였다. 아! 밑도 끝도 없이 지속되었던 스릴과 서스펜스! 하지만 어느새 저녁이 찾아 왔는지, 저마다 런닝샤스 위에 청회색 잉크 빛이 짙게 드리워지고 친구들의 까까머리 실루엣만 보일 무렵, 골목길을 돌아 아이들 이름을 부르는 어머니들의 지친 음성이 들려오기 시작하면. 지상의 쾌락은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는 슬픔을 어렴풋하게 느꼈었다. 삶의 끝이 있을 거라는 사실을 서서히 침잠하는 어둠의 서늘한 기운으로 감지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 좀 숙연해졌던 것도 그런 연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신나게 놀던 장소는 요즘처럼 ‘놀이터’라 불리는 특별한 장소가 아니었다. 집안 구석구석 무엇이든 놀이터 아닌 곳이 없었다.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식구는 많았어도 집이 그렇게 크지는 않았다. 집이 작은 만큼 집터도 넓지 않았지만 작은 마당이 있어, 동네 아이들 서넛이 모이기만 하면 구슬치기, 자치기, 사방치기, 줄넘기, 제기차기, 구슬치기, 딱지치기, 공기놀이, 연날리기 등 종목을 바꿔가며 신나게 놀았다. 어쩌다 아이들 숫자가 늘어나면 편을 갈라 닭싸움, 말뚝박기 같은 놀이는 물론 벽이나 문설주에 술래를 뽑아놓고 ‘무궁화 꽃이 피었네’나 술래잡기를 하며 온 집안을 헤집고 다니곤 했다. 어디 그뿐인가. 집안에 작은 계단이라도 하나 있으면, 그냥 오르내리는 법이 없었다. 담장 옆 아카시아 잎줄기라도 따서 하나씩 나누어 갖고 ‘가위, 바위, 보’를 하며 한 계단씩 오르내리는 승부게임을 즐겨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었다.

마당은 유희공간(놀이터)이었으며. 동시에 유희의 대상(장난감)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아도 놀라운 것은 지칠 줄 모르는 놀이정신과 뛰어난 환경 적응 능력이 상당한 경지에 이르렀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마당의 크기나, 모양, 토질까지 고려해서 놀이의 규칙을 적절하게 바꾸어 놀 줄도 알았고, 집안에 커다란 나무라도 한 그루 있으면 반드시 그 기둥 굵기나 모양을 응용하여 뭔가 기발하고 재미있는 놀이와 규칙을 만들어 놀기도 했었다. 게임에서 진편에게 돌아갈 벌칙도 다양해서 밭고랑 사이로 이긴 편을 업고 지나가게 한다든지, 뜰팡에 줄지어 앉아 이긴 편에 돌아가며 절을 하게 한다든지, 어떻게든 집 안팎의 공간구조와 생김새를 기막히게 이용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공간의 상상력과 적응능력은 특별히 타고난 것이라기보다는 어렵고 힘들게 살면서 자연스럽게 얻어진 것이었다고 하는 편이 옳을 듯싶다. 오죽 놀만한 것이 없으면 어떻게든 만들어서라도 놀아야 했겠는가? 이렇다 할 장난감도 별로 없었던 데다, 있었다 하더라도 쉽게 살 수 없었던 처지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별로 없었다는 말이다. 가진 것이라고는 스스로 움직여 몸을 놀리는 것과, 집 안팎에 널려있는 공간을 최대한 응용하는 것 이외는 달리 방법이 없었으니 말이다. 뭔가 재미를 끊임없이 만들어내지 않고서야 하루하루가 일 년처럼 느껴졌을 어린 시절의 그 기나긴 시간표를 어떻게 견디어내었겠는가? 그러므로 어린 시절 시간과 공간을 경영했던 솜씨는 물질의 궁핍이 이루어낸 생존전략의 다른 모습이 아니고 무엇이었겠는가?


김억중 한남대학교 건축학부 교수(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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