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하는 눈

김억중 한남대 건축학부 교수(건축가)l승인2017.09.08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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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유하는 눈(일러스트:김억중)

요즘 각종 매체나 홈쇼핑 등 어디에서든 가전 기구를 비롯한 일상 도구들이 세련된 디자인을 앞세워 소비자의 구매력을 자극하는 경우를 아주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제품 사이에 기능성이나 적용 기술의 격차가 줄어들면서 가격이 다소 비싸더라도 디자인 잘된 것들이 오히려 잘 팔리기 때문이다. 물론 끊임없이 새로운 모델을 선호하는 신세대 취향도 디자인 소비를 부추기는데 큰 몫을 하고 있다. 그만큼 많은 소비자들이 세련된 디자인을 구매하는데 익숙해 있다는 말이다.

어찌 보면 제품 디자이너들은 세련된 형태를 생산하여 대중의 미의식을 확장하고 계몽하는 첨병들이다. 하지만 새로운 형태를 드러내 보일 때는 대중보다 조금씩 앞서가며 길들여 나갈 뿐이다. 지나치게 앞서가는 것은 모험이 뒤따르는 일이므로... 덕분에 많은 이들은 새로운 형태를 패션처럼 스스럼없이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 있다. 때로는 단지 새롭다는 이유만으로도 새로운 디자인은 그 나름의 호소력을 지니기도 한다. 그렇게 대중은 늘 새로운 형태의 유혹 앞에 노출되어 있다.

건축에서도 잘 디자인 된 집을 선호하는 경향이 상업건축을 중심으로 점차 눈에 띄게 확산되고 있다. 반가운 일이긴 하다. 하지만 무엇이 잘 디자인 된 집이냐 하는 문제는 반드시 짚어 보아야한다. 집은 가전제품의 외양을 디자인하는 것보다 더 깊고 폭넓은 사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기능을 잘 충족시키면서도 외관이 세련된 집이라 하더라도, 대지의 메시지와 개념이 형태구성을 통해 질서 있게 잘 다듬어져 있지 않으면 잘 디자인된 집이라고 할 수 없다.

잘 디자인된 집인지를 알아내려면 형태 속에 숨어 있는 질서를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디자인을 분석하고 그 뜻과 미학적 가치를 사유할 줄 아는 훈련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 바깥 모양에 현혹됨이 없이 그 집의 진면목을 바로 볼 수 있다. 문제는 감각만으로 그 질서가 한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유혹을 견디어내며 질서를 응시할 수 있는 ‘눈’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바라다보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는 눈, 관찰하지 않는 눈.

그러므로 우리 눈은 바라보는 순간 스쳐지나가듯 보는 눈이 아니라 <사유하는 눈>으로 바뀌어야 진면목을 볼 수 있다. 호시우행(虎視牛行)이라 ! 호랑이처럼 뚫어지게 보고 소처럼 진득하게... 집다운 집을 볼 줄 아는 눈과 태도가 바로 그래야만 한다.


김억중 한남대 건축학부 교수(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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