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인드글라스에 대하여

김억중 한남대학교 건축학부 교수(건축가)l승인2017.12.0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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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김억중

스테인드글라스를 이해하려면 하늘 높이 치솟은 고딕건축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스테인드글라스는 세상에 없던 꽃을 피워내기 위해 건축기술과 구조, 공간 사이의 교묘한 역학관계 사이의 공조 속에 극적으로 태어난 존재이기 때문이다.

“...지붕 위에서는 땅위에서보다 바람이 항상 더 세게 불어치는 것 같았다....균열이 생기는 것은 둥근 천장의 ‘무게’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높이’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는 천장의 무게를 충분히 감당할 견고한 성당을 지었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그는 바람을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높이 솟은 벽들은 끊임없이 비바람에 시달렸고 너무 높았기 때문에 바람에 의해 균열이 생겼던 것이다. 지붕 위에 서서 그 지붕의 힘을 느끼며 그는 발아래에서 팽팽하게 균형을 잡고 있는 건축물이 받는 영향을 그제야 생각할 수 있었다. 그는 그 건물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으므로 그 벽들이 마치 자기 몸의 일부처럼 그 긴장을 거의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바람이 성당 옆으로 밀어닥쳐 그의 몸이 밀리는 것과 똑같이 성당은 휘어질 수 없었으므로 균열이 생겼던 것이다.”(켄폴리트 지음, 한기찬, 김남주 옮김, 사나운 새벽 4)

추리소설 “사나운 새벽”은 건축에서 기술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 것인 지를 잘 보여준다. 소설 속 성당은 건물 폭보다 높이가 적어도 2배 이상이나 되는 고딕양식이 틀림없다. 주인공은 자신이 짓고 있는 성당 벽체에 균열이 가는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지붕에 올라가는데, 지상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세찬 바람의 위력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자신이 풍하중(風荷重)을 고려하지 않았던 사실을 깨닫는다. 벽체에 금이 갔던 것은 천장 무게를 이겨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바람의 힘에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벽체를 두텁게 하여 자중으로 바람을 이겨내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무거운 석재를 아주 높게 쌓아 올리는 일도 만만치 않으려니와 상부 무게를 견뎌내려면 하체가 더욱 더 비대하지 않으면 건물 스스로 설 수 있는 재간이 없다. 게다가 하체가 커지면 그만큼 막대한 재료와 공사비용이 소요되며, 무엇보다도 내부공간의 유효면적이 크게 줄어들어 효용성이 떨어진다. 하늘을 찌를 듯이 좁고 높은 고딕공간에서 벽체의 비대한 몸무게만으로 바람에 저항하는 방법은 전혀 합리적이지 못하다.

그래서 고딕성당은 건물 자체 몸무게를 줄이기 위해 골조 시스템을 채택하고, 바람에 견디기 위해 골조를 좌우에서 튼튼하게 잡아주는 부축벽(flying-butress)으로 보강하는 방법을 선택했던 것이다. 고딕양식의 형태언어 또한 힘에 도전하여 그 흐름을 새롭게 해석한 결과로 태어났던 셈이다.

성당 내부 기둥을 살펴보면 여러 개 가느다란 리브(rib)들을 조합해놓았는데, 그 하나 하나가 천장에서 바닥까지 힘의 흐름을 표현해주는 동시에, 공간이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나가는 느낌을 더 해준다. 리브로 인해 돌은 무거운 느낌을 벗어나 경쾌한 모습으로 뒤바뀐다. 재료의 본래 성질을 잊게 해주는 것, 그것이 건축의 힘이다.

골조를 빼고 난 나머지 비어 있는 부분을 가벼운 재료인 착색유리로 채우는데, 이를 스테인드글라스(stained glass)라고 한다. 만일 투명한 유리를 끼웠다면, 성당내부에 직사광선이 통째로 유입되어 내부 활동에 커다란 불편을 주었을 것이며, 바깥세상의 빛과 별다른 구별이 없었을 터이니 성스러운 분위기를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착색유리를 통해 산란된 빛은 저 높은 성당공간을 천상의 신비와 아름다움으로 물들인다. 고딕공간이 그토록 높아야만 하는 이유를 스스로 찾게 된 셈이다. 사실 쓰임새로만 치자면 성당 높이가 그렇게 높을 필요는 없다. 스테인드글라스가 바로 그 쓸모없는 공간을 가장 쓸모 있게 해주었던 셈이다. 쓸모없는 것에 쓸모를 부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술이 아니던가.

부축벽, 리브, 스테인드글라스와 같은 형태요소의 생성은 새로운 구조시스템의 출현과 무관하지 않다. 고딕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공간을 표현해내려면, 그와 같은 기술 없이는 불가능했다. 그런 의미에서 건축은 힘의 흐름을 제어하는 적정 기술의 실험과정이기도 하다. 때로는 기술적인 난제가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 내는데 걸림돌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유능한 건축가라면 기술적인 어려움을 “꼭 그래야만 되는” 상태로 역전시켜, 그 안에서 새로운 표현 가능성을 찾아낸다. 그 정점에서 새로운 양식이 탄생하는 것이다.

나는 화가신부이신 큰 형님과 함께 새로 지은 교회들을 방문하곤 했지만 아연실색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시대 기술언어와 전혀 상관없는 고딕양식을 어설프게 모방한 교회를 보는 것이 그렇다. 그런가 하면 공간 구조와 어울리지 않는 스테인드글라스는 자칫 불그스름한 정육점 조명이나 울긋불긋한 카바레 조명을 방불케 한다. 값비싼 스테인드글라스를 모셔 놓았다는 것만으로 성스러움이 찾아드는 것은 아닐진대.... 뜻을 제대로 모르고 껍데기만 모방한데서 온 비극이다. 큰 형님 말씀처럼, 이런 교회에서는 차라리 눈을 감아야 하니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김억중 한남대학교 건축학부 교수(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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