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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억중 교수 삽화 |
누구든 덧없이 가고야마는 세월을 비켜갈 수 없을 터. 어쩌면 홀로 쓸쓸히 맞이하게 될 지도 모를 인생의 남은 여정을 어떻게 마무리 하실는지. 그러려면 젊은 시절부터 틈틈이 홀로 즐기는 법을 몸에 익혀야 하지 않을까요? 그대의 집이 바로 독락당이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 보입니다.
“독락당 대월루는
벼랑 꼭대기에 있지만
옛부터 그리로 오르는 길이 없다
누굴까, 저 까마득한 벼랑 끝에 은거하며
내려오는 길 부셔버린 이”
(조정권, ‘독락당’)
허긴 제게도 독락당이 있었지요. 어릴 적 홀로 즐겼던 다락방이 있었으니 말입니다. 두 평이나 될까, 푹푹 찌는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본 잡지에 나온 르느와르를 보았고, 세잔을 보았고 프랑스를 부러워했습니다. 다락방 조그만 창밖을 내다보며 가녀렸던 옆집 순미를 마음속에 두었고, 제법 무거운 아령을 들어 근육을 가꾸어가며 그럭저럭 내 인생을 간추리기 시작했었지요. 때로 공부가 하기 싫어 늘어지게 낮잠을 자다보면 어느새 밤이 되어 다음날 시험을 여지없이 망치고야 말았습니다. 다락방 밑 부엌의 찌개 냄새만으로도 온몸에 돋아났던 식욕의 나날들. 그렇게 내게도 혼자 즐기던 독락당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린 어린 시절 이미 독락당으로 ‘출가’했었고, 그곳을 홀로 즐길 줄 아는 수도승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세월이 지나 우리는 스스로가 곧 독락당임을 어렴풋하게나마 깨닫기도 전에, 무엇이든 파괴하거나 응고시키고야마는 점액질 세파에 이리저리 휘둘려 독락의 산문을 파하고 나와 버린 것이었을 뿐. 우리는 그렇게 독락당을 잃어버렸고, 어느 날 시인의 시를 읽고 비로소 그 꿈이 몇 점의 울혈로 남아 피 속을 떠돌아다니고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므로 그대의 독락당은 새로 지어야 하는 집이 아니라, 있었던 그대로 복원해야 할 집! 그 때는 독락당이 무언 줄도 모르고 즐겼으나, 이제는 알고 즐길 수 있을 터이니, 그 묘미 또한 얼마나 극진하랴 싶습니다.
김억중 한남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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