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둥구조와 벽구조

김억중 한남대학교 건축학부 교수(건축가)l승인2018.03.10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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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 : 김억중

원시인들은 집을 짓기 위해 어떤 기술을 생각해냈을까? 18세기 때 건축이론가였던 로지에(M. A, Laugier)의 오두막집(cabanne rustique) 이야기다.

“원시인은 일용할 양식을 구하기 위해 뭔가 일을 하다 피곤하면 풀밭에 누워 휴식을 취한다. 잠시 후 태양이 찌는 듯 타오르자 그는 더 이상 누워 있을 수 없어 서늘한 곳을 찾아 숲 속 그늘 안으로 깊숙이 피신한다. 하지만 수증기가 하늘에 올라 먹구름이 끼고 사나운 비가 쏟아져 내린다. 가지와 나뭇잎들만으로는 습기를 피할 수 없어 다시 동굴을 찾아 들어간다. 그러나 그 속은 어둡고 음습한데다 탁한 공기를 호흡하는 것이 고역이다. 마침내 그는 자연 상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여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주거를 꿈꾼다. 그는 안과 밖을 구분하기 위해 숲에서 잘라온 4개의 나뭇가지를 골라 정사각형 모서리에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4개의 가지를 다시 수평으로 얹은 후 그 위에 비탈진 가지를 얹는다. 이어서 지붕 위에 햇살이나 비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나뭇잎을 촘촘히 덮는다. 나무 기둥사이를 나뭇잎이나 가지로 덮어 내부 공간을 만든다.”

시나리오에 따르면 원시인은 자연조건을 있는 그대로 이용하는 것만으로는 편안하고 쾌적한 은신처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결국 인위적인 건축 행위를 통해 안과 바깥 공간을 확연하게 구별하면서부터 온전한 거처를 실현하기에 이른다.

재미있는 것은 안과 밖을 구별하기 위해 원시인이 기하학적인 지식과 구조역학의 지혜를 잘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에게 정사각형은 참으로 위대한 발견이었음에 틀림없다. 추측컨대 처음에는 불규칙한 모양으로 얼기설기 기둥과 서까래를 얹으려 했겠지만 쉽게 무너져 내리곤 했을 것이다. 모든 부재가 크기가 제 각각 달라 부재들을 짜 맞추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사각형을 이용하면서부터 같은 크기의 기둥과 보, 서까래와 같은 구조재를 미리 만들어 짜 맞출 수 있게 되었고 집도 안정적으로 서있을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르네상스 시대 대표적인 건축이론가였던 알베르티(L. B.Alberti)가 말하는 원시인 집을 보면 로지에의 오두막집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에 따르면, “최초에 사람들은 위험으로부터 안전한 지대에 쉴만한 장소를 찾았다. 적합하고 쾌적한 장소를 찾아 그들은 거기에 정착하여 대지를 확보하였다. 같은 장소에 한꺼번에 모든 가재도구와 사물들을 들여놓기를 원치 않게 되어 그들은 한쪽에는 잠자는 곳을 다른 한쪽에는 난로를 놓는 식으로 모든 장소를 서로 다른 용도에 따라 배치를 하였다. 그런 후에 그들은 햇빛과 빗물을 피할 수 있는 은신처를 만들기 위해 지붕을 어떻게 해 얹을 것인지를 고려하기 시작하였다. 그러한 목적으로 이들은 지붕을 그 위에 얹기 위해 벽을 쌓아 혹한과 강풍으로부터 더욱 잘 보호받을 수 있게 되었다. 마침내 그들은 바닥과 지붕사이의 벽에 창과 문을 내어 통행이 가능하고 사회적인 활동으로 벌어들인 것들을 유입하게 된다. 아울러 적절한 때 햇빛과 바람을 실내로 끌어들이고 실내에 차있는 습기나 수증기를 밖으로 내보내게 되었다.”고 말한다.

두 원시인이 주거를 꿈꾸는 목적은 같더라도 그것을 실현하는 수단은 분명히 다르다. 알베르티의 원시인은 로지에의 원시인처럼 기둥을 쓰지 않고 벽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두 원시인은 왜 서로 다른 구조 시스템을 선택하였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두 원시인이 사는 자연과 지리적 환경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로지에의 원시인은 요즘으로 치자면 프랑스인이며 알베르티가 말하는 원시인은 이태리인인 셈이다. 우산 속에 바바리코트 깃을 여미고 하염없이 내리는 빗속을 우수에 가득 찬 모습으로 걸어가는 알렝들롱(Alain Delon)! 그가 나오는 프랑스 영화를 보면 잘 알 수 있듯이 그들은 한 뼘의 햇빛이 그리운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해만 뜨면 입고 있던 옷을 훌훌 던져버리고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일광욕을 즐긴다. 그런 만큼 그네들 집은 빗물이 잘 흘러내려 배수가 잘 되고 가능한 햇빛을 많이 받을 수 있는 구조여야 한다. 그러므로 지붕은 경사지고 창문은 크면 클수록 바람직하다.

구조적으로 꼭 필요한 요소만을 기둥으로 처리했으니, 창문을 최대한 크게 낼 수 있지 않은가? 유럽 북부로 갈수록 창문을 크게 내거나 그 숫자가 많은 이유도 집들이 모두 기둥구조를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이태리는 어떠한가? 연중 비오는 날보다는 직사광선의 위력이 대단한 나라가 아닌가. 그들은 오히려 햇빛보다는 선선한 그늘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다. 두터운 벽체로 그늘이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합리적인 구조 방식인 셈이다. 그들 집은 창문을 굳이 크게 할 필요도 없고 경사 지붕을 둘 필요도 없다. 통풍만 잘 되면 그만이다. 로지에의 원시인들은 기둥구조에 가지와 나뭇잎을 채워나가는 방식으로 집을 만들었다면, 이들은 재료도 아낄 겸, 벽체의 양을 줄이고 비워내는 방식으로 집을 만들었다.

이처럼 두 원시인들이 추구했던 쾌적한 공간의 의미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들 집은 서로 다른 자연 조건에 대응하기 위해 끊임없이 적절한 재료와 기술을 치열하게 모색한 결과였음을 알 수 있다. 집이란 결국 ‘그 자리’ 환경에 적합한 재료와 시공, 기술로 정교하게 빚어낸 공간 구조물이다. 건축역사를 돌이켜보아도 어떠한 재료나 공법이든 사회적인 필요에 따른 생성 배경이 있으며, 고유한 지리적, 환경적 조건에 따라 시공 방법이 다르고 결과적으로 그 곳만의 독특한 형태를 만들어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것이 곧 특정 시대와 장소를 대표하는 건축양식의 근간인 셈이다.


김억중 한남대학교 건축학부 교수(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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