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의 그림

김억중 한남대학교 건축학부 교수l승인2018.04.06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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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 : 김억중

건축가가 그리는 그림은 화가의 경우와 달리 회화적인 효과를 맘껏 드러내기 위해 그리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설계하고 있는 집이 실제로 지어질 경우 ‘그 자리에 꼭 어울리는 집’인지를 끊임없이 검증하기 위해 그리기 때문이다. 그림은 수많은 가능성 중에서 어느 하나만을 선택하기 위해 매진하는 과정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그의 그림은 대지에 대한 사유의 전각(篆刻)인 셈이다. 그 그림을 잘 살펴보면 건축가의 시선이 하늘(자연)-땅(지리)-사람(삶)을 동시에 아우르기 마련인데, 흥미로운 것은 그림 속 건축가의 눈높이가 어디에 위치하느냐가 참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그림의 시점이 처음부터 사람 눈높이가 아니라, 날아다니는 새 눈높이로 하여 지어진 대표적인 집이 베르사이유 궁전이다. 무한대로 펼쳐지는 조감도를 보라. '짐이 곧 태양'이라 했던 루이 14세의 권위가 한 눈에 드러나는 시점이지 않은가?

베르사이유 궁은 '짜잔'하는 이 출갑진병(出甲陳兵)의 명장면을 위해 존재하는 듯하다. 모든 요소들은 무기와 군사를 도열해 놓은 열병식 구령에 따라 부동자세를 취한 듯, 흐트러짐 없는 배경으로 도열해 있다. 좌우대칭의 근엄한 기하학적 질서가 광활한 대지를 지배하고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펼쳐진 정원과 저수지를 끼고 걸어 다니다보면 피곤하고 짜증이 난다. 그것은 깃발을 흔들어대며 서둘러 버스에 태우려는 가이드의 질책 때문만은 아니다. 그 질서에 질린 탓에다 눈높이에서 펼쳐지는 아기자기한 재미를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천안 독립기념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문에 서면 대웅전 같은 건물 모습이 한 눈에 다 들어온다. 거기까지 걸어가는 길은 어떤가? 비원처럼 숲길을 가다가 문득 건물을 발견하는 재미조차 전혀 없다. 초반에 볼 것 다 보아버렸으니 남은 일은 오직 저기 보이는 먼 곳을 향하여 행진! 이쯤 되면 땡볕에 걷기란 거의 고문 수준이다. 가까이 가서 형태요소들의 디테일을 보면 그렇게 우악스럽고 작위적일 수가 없다. 눈높이가 고려되지 못한 건축이다. 전시물이 부족한데다 기획능력도 시원치 않아, 전시관에 사람들 발길이 끊긴다고 한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눈높이에서 느낄 수 있는 독특한 감흥이 없다는 데서 찾아야 옳다. 전시물이 아니더라도 건축만으로도 눈을 사로잡아 또 가보고 싶은 장소로 기억될만한 매력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변화와 굴곡이 없는 지루한 풍경은 경이로운 장면을 목마르게 찾고 있는 눈을 달래주지 못한다. 감동은 사람의 눈높이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 간과되어 있다. 허욕에 사로잡힌 집이니, 규모에 대한 놀라움은 있을지언정 진한 감동이 있을 리 없다. 위에서 내려다 본 평면의 환상이요 지상 위에 떠있는 망상일 뿐이다. 멋진 한 장의 그림일지언정 대지에 뿌리내린 건축은 아니다.

이처럼 ‘그 자리, 그런 집’은 그냥 찾아지는 것이 아니다. 설계과정에서 그려지는 모든 그림을 통해 철저하게 검증되지 않으면 결코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의 눈높이에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 마침내 떠오르는 법. 인내는 고귀한 노동의 집약을 전제로 한다. 자신과 싸움이 전제된 노동이기에 고귀한 것이다. 단언컨대 건축가의 스케치작업 또한 값진 노동의 현장이라 할만하다.

그래서 미완의 꿈이 담겨있는 그림을 보는 것은 다 완성된 집을 답사하는 것만큼이나 흥미롭다. 꾸겨진 종이는 미지세계의 탐험을 앞둔 자의 설렘과 망설임이 손땀으로 얼룩져 있다. 꾹 눌러 그린 잉크 자국에는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을 염원하는 두런거림이 침전물처럼 가라앉아 있다. 몇 개 그림들이 지워졌거나 겹쳐진 부분은 부초처럼 떠도는 생각들이 서로 부대끼며 언어를 향해 달려가다 아슬하게 멈춘 전쟁터다. 박박 그어진 선들은 생각을 미처 따라 잡지 못한 형체의 잔해이며, 때로는 고통을 주체하지 못한 자해의 상처이기도 하다. 드로잉은 사유와 언어의 계곡 사이에 피어오르는 안개 속에 서서히 드러나는 감동의 집을 탐험하는 작업이다.

산무유봉황(散霧有鳳凰) ! 마치 안개가 걷히고 나면 봉황이 드러나듯이... 수많은 그림 중에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설계과정은 고해와 번뇌의 세계다. 그 하얀 밤의 상처와 고통을 안고 사유는 언어의 좁은 문을 통과하여 감동의 집에 기거한다. 그 문은 아련한 추억과 감동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그 집만의 따스한 온기와 독특한 향기를 뿜어내며...


김억중 한남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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