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집은 어디까지인가?

김억중 한남대학교 건축학부 교수(건축가)l승인2018.08.13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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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 : 김억중

유람과 기거를 반복해야 했던 선비들에게 늘 마음 쓰이는 곳은 아무래도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집이었을 것이다. 농암 선생께서 간밤의 꿈이 하도 어수선하여 아침에 일어나 쓰신 시 한편을 읽어보면 일상의 슬픔과 기쁨을 가족과 함께 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얼마나 크셨을지 가슴이 저며 온다.

여행길 마음이라 구름 낀 듯 어둡더니 / 客中心緖似雲多
꿈속에서 갈팡질팡 울다가 노래했네 / 夢裏紛紛哭且歌
슬픔이랑 즐거움 함께할 수 없거니 / 哀樂極知難並立
고향 집 소식이 궁금하기 그지없네 / 故園消息定如何
[농암집 2권]

생가를 그리워하며 벼슬을 내려놓고 언제나 가문의 선영을 모시고 있는 고향땅 가족 품안으로 되돌아갈지를 염원하는 선비들이 어찌 농암선생뿐이었겠는가. 출간된 문집 속에 그토록 수많은 시들이 생가를 그리워하는 소재로 그득했던 것을 보면 이를 여실히 반증하고 있음에랴.

다산 정약용 선생 같은 경우는 시를 지어 마음을 달래는 데 그치지 않고 아예 생가를 그림으로 그려 벽에 붙여 놓고 그리워했었으니 그 심정이 얼마나 절실했었던 지,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을 듯하다. 선생은 송(宋)나라 소식(蘇軾)이 호주(湖州)에서 귀양살이 할 때 하남성 아미산(峨眉山)이 자기 고향 촉(蜀)에 있는 아미산과 모양이 닮았다 하여, 작은 아미산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그 산을 그림으로 그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며 향수병을 이겨냈다는 고사를 상기시키며 직접 붓을 들어 고향 생가를 그리셨다 한다. 그 그림은 불행히도 오늘 우리에게 전해내려 오지는 않았지만 뛰어난 화가이기도 하셨던 선생의 사의 능력이나 그림 품격으로 치자면 분명코 명작의 반열에 들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다산 선생이 그린 생가도(生家圖)는 어떠했을까? 그 그림을 직접 볼 수는 없으나 ‘장난삼아 그려본 소계도[戲作苕溪圖]’라는 선생의 시 속에 기술된 요소들을 따라 전체의 풍경을 떠올려보면 그 모습이 선연해진다.

소자첨은 남해에서 귀양살이하면서 / 子瞻謫南海
아미도 때문에 병이 나았기에 / 愈疾峨嵋圖
나도 지금 소내를 그려서 보고픈데 / 我今欲畫苕溪看
세상에 화공 없으니 그 뉘에게 부탁하랴 / 世無畫工將誰摸
시험삼아 수묵으로 초벌 그림 그려보니 / 試點水墨作粉本
수묵 자국 낭자하여 먹탕이 되고 말아 / 墨痕狼藉如鴉塗
늘 갈아서 그렸더니 손은 점점 익숙해도 / 粉本屢更手漸熟
산 모양과 물빛이 그래도 흐릿하데 / 山形水色猶模糊
그것을 당돌하게 비단에다 옮겨 그려 / 唐突移描上綃面
객당의 서북 쪽에다 걸어두었더니 / 掛之客堂西北隅
푸른 산줄기 휘감긴 곳에 철마가 서 있고 / 翠麓縈廻立鐵馬
깎아지른 기암에서 금부가 날아가며 / 奇巖矗削飛金鳧
남자주 가에는 방초가 푸르르고 / 藍子洲邊芳草綠
석호정 북쪽에는 맑은 모래 깔렸으며 / 石湖亭北明沙鋪
저 돛은 필탄을 지나는 배 분명하고 / 風帆遙識筆灘過
나룻배는 귀음을 가면서 부르는 듯 / 津艓似趁龜陰呼
검산은 절반이나 구름 속에 들어 있고 / 黔山半入碧雲杳
백병봉은 저 멀리 사양을 지고 섰으며 / 白屛逈立斜陽孤
하늘가에 높다랗게 보이는 절과 함께 / 天畔岧嶢見僧院
물모이는 곳 지세가 잘 도나 어울리네 / 水鍾地勢尤相符
소나무 노송나무 덮고 있는 것 우리 정자이고 / 松檜蔭門吾亭也
뜰에 가득 배꽃 핀 곳 저건 우리 집이지 / 梨花滿庭吾廬乎
우리 집이 저기 있어도 갈 수가 없어 / 吾廬在彼不得往
날로 하여 저걸 보고 서성대게 만드네그려 / 使我對此空踟躕

이처럼 소계도 속의 집은 집 한 채만 따로 떼어 그린 그림과는 대조적으로 멀리 상단으로부터 철마-기암-남자주가-석호정-필탄-귀음-검산-백병봉-절-물모이는 곳-정자-배꽃 핀 뜰 하단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있는 듯 없는 듯 커다란 질서 속에 작은 한 부분으로 스며들어 있는 모습이 크게 다를 것이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생가의 영역인지 그림 속, 집의 경계는 모호하기만 하다. 허긴 오원의 그림처럼 산과 강과 수목이 넓게 펼쳐진 대자연 안에 고즈넉한 모습의 작은 집이 아무런 경계 없이 함께 그려진 산수도는 다른 화첩에서도 꽤 많이 볼 수 있는 게 사실이다. 심지어는 그런 그림의 구도나 내용이 너무 천편일률적인 게 아니냐는 의문이 들 정도로 진부한 소재인데다 으레 그렇게 그리는 것이 관습적인 유형으로 굳어진 게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산 선생의 시를 읽어보면 소계도 속의 풍경은 오원의 그림과는 달리 누군가가 그렸던 그림을 모사한 임모도(臨模圖)가 아니며, 관념 안에 머무른 풍경을 임의대로 조합한 풍경이 아니다. 오히려 기거와 유람 사이를 끊임없이 이어주었던 길을 걸으며, 구석구석 마음을 주어가며 선생의 누적된 체험을 통해 각인된 풍경이며 하나하나 실명이 거론되어 있는 진경산수(眞景山水)이기 때문이다.

다산의 생가는 소유권이 등재된 집안 울타리에 그치지 않고 그 경계를 분명 크게 넘어서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을 것이니, 선생 마음속에 집이라 함은 단순히 물리적인 집 한 채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마당에 서있든 방안에 들어가 있다 해도 결코 보이지도 않았을 저 멀리 3,40리 바깥 남자주 근처까지 포괄하여 자신의 집으로 여겼던 것이다. 눈을 감아도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저 익숙한 풍경 모두가 집의 일부일 뿐, 선생에게는 집과 주변 환경을 따로 떼어 놓을 수 없었을 것이다.

요컨대 외지로부터 자신의 집안 마당에 이르기까지 들어오고 나가는 동선을 따라 자신의 체험과 감각 안에 포착되는 총체적인 경관 모두가 선생의 집이었던 셈이다. 소계도의 다산 생가는 결국 그림 전체가 곧 한 채의 집이었으니, 그 중 어느 부분을 잃어도 풍경에 서글픈 금이 가는 것이요 추억의 집 모두를 잃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 선생의 집은 비록 왜소할지 모르나 집에 대한 관념은 그 물리적 경계를 뛰어넘을 만큼 오히려 크고 활달하다. 선생의 소계도는 자연의 질서 속에 경계 없이 존재하는 집이 곧 집다운 집의 정의요 개념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 주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집 바깥, 또한 자신의 집이라는 사유의 확장 ! 그러고 보면 내 땅에 내 맘대로 집 한 채 달랑 지으면 그만이라는 데 익숙해 있는 우리 모두가 곰곰이 새겨보아야 할 교훈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김억중 한남대학교 건축학부 교수(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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