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추억의 사원

김억중 한남대학교 건축과 교수(건축가)l승인2019.11.25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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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rpaccio(1466-1525), Il miracolo della reliquia della Santa Croce, 1494

어렸을 때부터 나는 제사상에 오른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아 늘 어머니로부터 꾸지람을 들으며 컸다. 저도 안 먹는 음식을 대접하는 고얀 놈인데다 음복을 마다하는 불효자라고 생각하실 지도 모를 조상님들께는 늘 송구스러운 마음을 지녔었지만 달리 어쩔 방도가 없는 일이었다. 제사 지내는 동안 집안 그득했던 만수향이 결국은 음식에 밴대다 국물이 식어 찌꺼기와 함께 잿빛으로 변해 있는 모습을 보면 차마 수저를 뜰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라지만 어느새 신선도가 떨어져 상 위의 음식은 변색되기 마련이어서, 조기며 육적은 물론 윗부분을 둥그렇게 깎아놓은 과일 모두가 사그라진 모습을 보고나면 식욕은 커녕 헛구역질까지 날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명절 때면 굶는 것이 상책이었던 나는 도대체 왜 이리도 까다로움을 떨었던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시각적인 과민 반응이외엔 다른 뾰족한 이유를 알 수 없다.

아! 그런데 이게 웬 반전인가? 시각과민증 환자나 다름없는 화상이지만 잘 익히지도 않은 채 붉은 속살이 그대로 드러난 소고기 육회를 덥석 먹게 되었으니 말이다. 생선회처럼 길게 썰어낸 비프 카르파치오(Beef Carpaccio)를 대하는 순간 즉시 식욕이 당기는 것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던 데다, 부드러우면서도 쫄깃쫄깃한 촉감은 물론 쏘스와 어우러진 감칠맛까지 제대로 즐길 수 있었으니 내가 보아도 놀라운 일이다. 아니 내가 나를 설명할 수 없어 난감할 지경이니 말이다. 내게 카르파치오는 이름부터가 남다른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그림은 내게 비프 카르파치오를 상기시켰고, 베니스의 곤돌라의 회상으로 이어져 축제 같은 삶의 환희를 고스란히 되돌려 주었다.
“화창한 날/ 멘델스존 씨와 뱃놀이를 갔지요/ 가까운 선창에서 우린 곤돌라를 탔지요/ 수로마다 떠 있는 곤돌라들/ 현악기군처럼 조용히 바다를 연주하고 있었지요/ 그이도 노를 잡고 물결의 현을 켜기 시작했어요” (서영처, 「베니스의 뱃노래」 일부)

하지만 지상의 낙원이라 할 저 그림 속의 활기찬 도시도 결국 시간과 더불어 흥망성쇠(興亡盛衰)를 거듭하며 언젠가는 스러져 가거나 대를 이어 잘 전해내려 오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저 활기찬 도시 모습이 그림으로만이 아니라 실제의 모습으로 대를 이어 번영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시대, 그 사람과 삶의 흔적을 어떻게 하면 지속적으로 기념하고 그 추억을 떠올리게 할 수 있는가?

놀랍게도 똘똘한 건축물 하나만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서 주인공 태영과 기주가 자전거를 타고 가다 마주치며 헤어졌던 곳이 아마 알렉상드르 다리(Pont Alexandre)로 기억된다. 당대 양식의 화려한 장식으로 그득한 다리를 건너다보면 하루도 빠짐없이 반갑게 안부를 묻는 구조물이 저 멀리 보인다. 치장 없는 맨 얼굴로 당당하게 서있는 에펠탑이다. 밤 10시쯤 되어서야 지친 하루의 수고를 위로하려는지 밝고 화려한 불빛이 반짝반짝 파리의 밤을 축복하며 작별을 고한다. 100년이 넘은 구조물이지만 지어졌을 때의 모습을 잃지 않으면서도 하이테크 설비와 예술가들의 상상력에 힘입어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하고 있다. 하늘을 찌를 듯한 높이와 빼어난 자태는 파리 골목이나 광장, 심지어는 건물 안팎에서도 천태만상의 위용을 드러내는 파워아이콘(Power Icon)으로 등극했다. 그토록 수많은 집들 중에서 저 아이콘을 즐겨 볼 수 있는 집은 그렇지 못한 집보다 부동산 가치도 확연히 다르다. 파워아이콘, 쓸 만한 놈 하나 만들어서 도시 전체에서 이리저리 우려먹는 재미가 쏠쏠한 곳이 파리다.

실제로 에펠탑 없는 오른편 그림의 파리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뭔가 모자라 허전한데다 별다른 매력마저 느낄 수 없어 보인다. 파워아이콘이 사라지는 순간 저 그림의 도시는 다른 도시와 구별이 되지 않을 만큼 고유한 정체성을 잃고 만다. 때론 건축물 하나만으로도 도시의 상징을 구현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건축 속에 잠재해 있는 저 막강한 힘은 결국 뭇사람들의 가슴 속에 추억의 사원을 굳건하게 지어주었던 근간이었던 셈이다. 세계인 모두에게 “아! 파리! 나도 언젠가는 저 곳에 가고 싶다”는 마음을 불러일으킬 감동의 엔진장치가 바로 에펠탑이라 해도 커다란 이견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1889년 귀스타브 에펠(Gustave Eiffel)이 파리 엑스포기념 건축물로 높이가 300m에 달하는 철탑을 계획했을 때만 해도 어떠했는가?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내로라할 당대의 문호 에밀 졸라(Emile Zola), 기 드 모파쌍(Guy de Maupassnt), 알렉산드르 뒤마(Alexandre Dumas)를 비롯하여 작곡가 구노(Gunot), 파리 오페라극장의 건축가 샤를르 가르니에(Charles Garnier) 등 유명 예술가 300여명이 대대적으로 건립반대운동을 전개하고 나서지 않았는가. 파리의 아름다움을 사랑했던 그들은 도시 한복판에 이처럼 쓸모도 없어 보이는데다 괴물처럼 흉측하게 생긴 철탑을 짓는 데 대해 프랑스 예술과 역사의 이름으로 공사 중지를 요청하며 강력하게 항의 했다고 한다. 이처럼 극도의 반대에 부딪혔던 에펠탑이었지만, "검고 거대한 공장굴뚝 같이 생긴데다, 기존 전통 건축물들을 능멸하고도 남을 애물단지“를 보러 완공 첫해에만 무려 2백만 명이 몰려들어 전대미문의 진풍경을 보며 열광했다 한다.

그러고 보면 극심하게 반대를 했던 지식인들은 관습에 젖어 당대 통용되었던 복고풍 전통건축의 가치만을 고집하다가 새로운 시대의 재료와 기술을 활용하여 미래 인류에게 커다란 추억을 선사하게 될 아방가르드 건축의 가치를 몰라보았을 뿐 아니라 주저 없이 부정하기까지 했던 셈이다. 건축이란 궁극적으로 추억을 덧붙여 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로부터 도시의 활기가 넘쳐난다는 것을...


김억중 한남대학교 건축과 교수(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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