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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경선 원장 |
직업 상, 저는 병적인 우울, 병적 불안, 혹은 분노조절 같은 것으로 힘들어하는 분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분들은 닥친 어떤 상황을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받아들이는 경우입니다. 즉, 무슨 일이 생기면 그 일의 원인이 자기 때문이라고 자책하시거나, 그 일의 최종적인 결과는 심각한 위험이라고 받아들이거나, 혹은 상대가 자기를 부당하게 대하고 있다고 받아들인다는 것이지요. 이런 해석은 대개 습관적이고 너무 익숙한 것이어서 스스로에게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당연한 것이지요. 이와 같이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 하는 경우가 참 많지만 어떤 경우는 그 해석이 맞는 경우도 있지요.
그러니까 외부 상황을 그 자체로 적절히 받아들였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가도 또한 제 관심 분야 중에 한가지입니다. 하지만 저 역시 습관적으로 잘 못 이해하고 해석하는 경향이 훨씬 더 많아 사실은 적절히 받아들였을 때의 대처에는 저 역시 서툰 것이 사실입니다.
제가 겪었던 예를 들어 보죠. 운전 중에 잠깐 한 눈을 파는 사이, 접촉사고가 생겼습니다. 물론 저나 상대나 크게 다치진 않았습니다. 여하간 가끔 생길 수 있는 그런 사고였습니다. 이 경우 한 눈을 판 스스로를 과하게 자책하거나 혹은 상대의 과실에 대해 격하게 화를 내는 것은 적절한 대처는 아닐 것입니다. 보다 적절한 것은 안전을 최우선으로 신속하게 행동하는 것일 겁니다. 그러니까 자책감, 불안감, 분노감에 빠지는 것은 어쩌면 습관적인 해석에 따르는 자동 반응이고 상황을 있는 그대로 봤다면 보다 적절한 대응을 하게 될 것입니다.
또 다른 예로 시골의 작은 마트에서 계산을 하려고 줄을 서있습니다. 앞 사람이 여럿이 여행을 왔는지 굉장히 많이 쇼핑을 했습니다. 계산 시간도 꽤 오래 걸렸지요. 저야 뭐 바쁠 것도 없고 서너 가지만 계산하면 됩니다. 이제 제 차례인데 앞서 계산을 마친 어떤 아주머니가 포도 한 송이를 들고 와서는 먼저 할 수 없는지 제게 양해를 구하고 있습니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양보하면 되고 그럴 수 없다면 사정을 얘기하고 차례대로 하는 것이 맞겠지요. 그러나 거기서 ‘왜! 맨 날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기는 거야?’ 라든가 ‘차례를 당연히 지켜야지 무슨 그런 양해를 구하고 그래!’ 등의 생각으로 짜증이 나거나 그것을 표내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면 그것들은 제 자동 반응일 것입니다. 물론 저는 그렇습니다. 여기서도 상황을 있는 그대로 봤다면 적절하게 대응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어떤 외부 자극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면 우울, 불안, 분노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반응보다는 그 상황에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상황으로 요약되는 외부의 자극은 오감을 통해 순간적으로 감각되고 그 순간, 거의 동시에 인지적 해석이 일어나며, 역시 거의 동시에 감정 반응이 일어나면서 우리는 거기에 사로잡힙니다. 그리고 나의 감정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너무 익숙합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상황이 종료되고 나면 조금의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 아쉬움을 잘 봐야합니다. 뭔가 적절한 대응이 아니었다는 증거입니다. 그 때 그 과정을 잘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내 습관적 해석, 혹은 생각, 그리고 그 때의 감정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경선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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