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영 광원산업 회장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

자서전에서 드러나는 그녀의 도전과 좌절 그리고 돈과 기부 박기성 기자l승인2020.07.24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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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자 시절의 이수영 회장(사진 제공=KAIST 발전재단)

‘KAIST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반드시 나와야 한다.’며 23일(목) 676억 원 상당의 부동산을 기부한 이수영 광원산업 회장(83세)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이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미디어대전은 전날 이수영 회장의 기부 소식을 전한데 이어 여장부의 인생역정을 그녀의 자서전을 통해 들여다봤다.

이수영 회장의 기부 소식과 함께 관심을 모은 것은 그녀의 뒤늦은 결혼이다. 이수영 회장은 지난 2018년 81세의 나이에 서울대법대 동기동창생과 결혼식을 올렸다. 초혼인 이수영 회장과 상처한 남편 김창홍 변호사(82)와의 극적인 결혼이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러나 지난 2018년 11월 출간된 이수영 회장의 자서전은 ‘기자’, ‘돈’, ‘기부’ 등 세 단어가 화두다.

자서전의 표지사진에도 다름 아닌 경제신문 이수영 기자 모습을 담았으니 그녀의 기자시절에 대한 미련은 지금까지도 대단함을 직감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기자가 된 사연이 단순했다는 점이다.

서울대 법대 3년 때 치룬 첫 번째 사법시험에서 떨어진 것이다. 이수영 회장은 당시의 모습을 자서전에서 이렇게 회상했다.

‘도시락 2개를 싸서 새벽에 집에서 나와 오전 6시부터 밤 11시까지 도서관에서 온종일 앉아서 공부만 했다. 주로 분리대 중앙도서관에서 공부했는데(중략)... 그렇게 큰 도서관에 선풍기 한 대가 전부였다. 남학생들은 거의 속옷 바람으로 공부했다(중략)... 그곳에서 공부하는 여학생은 거의 내가 유일했다.’

경기여중, 경기여고에 서울대법대까지 순풍에 돛 단듯하던 그녀는 온갖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지만 결국 사법시험에서 처음 고배를 마신 뒤 몸과 마음이 모두 망가져 오랫동안 뒷방 신세로 전락했던 것이다.

겨우겨우 몸과 마음을 추스린 그녀는 영어학원에 다니기 시작한 어느 날, 학원 게시판에서 공고문 하나를 본 뒤 인생의 방향이 바뀌게 된다. 그 공고문은 서울신문에서 신입 기자를 뽑는다는 안내문이었다.

1963년 서울신문 10기 견습기자로 언론계에 발을 디딘 그녀였지만 ‘따돌림’ 등으로 4개월 만에 사직서를 쓰게 된다.

이에 대해 자서전에서 ‘서울대 법대 출신의 자그마한 여기자가 하나 들어와서 고개 빳빳이 들고 편집국을 다니는 내 모습이 곱게 보였을 리 없다.’고 그녀는 당시를 회상했다.

▲ 이수영 회장(왼쪽 세번째)이 1970년대 서울경제신문 기자 시절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왼쪽 두번째)과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왼쪽 네번째) 사이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 제공=KAIST 발전재단)

이후 그녀는 현대경제신문, 서울경제신문 등에서 기자생활을 이어가며 고 정주영 회장을 비롯해 고 이병철 회장 등 정·재계 인사들과의 인연을 바탕으로 기사를 발굴했다.

1980년 전두환 정부가 서울경제신문을 강제폐간한 후 언론에 대한 미련을 깨끗하게 접고 그녀는 사업가로 변신했다.

이수영 회장은 지난 1936년 4월 서울시 종로구 제부동의 한 가정에서 4남 4녀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아버지가 남긴 통장 2개를 사업 밑천으로 신문기자 시절 안양에 땅을 사 주말농장을 시작했던 것.

자서전에서 그녀는 ‘살아있는 걸 키우는 게 그나마 덜 힘들 것 같았다. 기자에서 목축업자로 그렇게 나는 새로운 인생의 길로 한발 한발 들어섰다.’고 회상했다.

그녀에게는 운도 따랐는데 처음 장만한 목장 부근으로 경인고속도로 나들목(IC)이 생기면서 목장터 1만1400평 가운데 1만평이 수용돼 많은 돈을 손에 쥐게 됐던 것. 이후 우여곡절 끝에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하천의 모래’였다.

당시는 전국에 건설 붐이 불 때였다. 남자도 생각하기 쉽지 않은 모래 채취에 손은 댄 여장부는 짧은 기간 꽤 많은 돈을 모은다.

자서전에서 그녀는 ‘그야말로 호시절이었다. 내 인생의 황금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중략)...모래도 팔고 소도 파느라 정신없던 시절이었다.’고 회상하고 있다.

서울법대 동기생이었던 서울신탁은행 돈암동 지점장이 지점의 대리 한명을 현장으로 보내 입출금 관리를 해줄 정도였다니 당시에 얼마나 많은 돈이 현장에서 오갔나를 짐작케 한다.

1988년 여의도백화점 5층을 통째로 인수하면서 기자→목축업자→모래 판매업자에 이어 부동산 업자로 변신하며 부를 축척하게 된다.

이수영 회장은 어쩌다 KAIST 고액 기부자가 됐을까? 이에 대해 그녀는 ‘참으로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라며 이렇게 밝히고 있다.

‘한 줄로 이야기하기 어렵다. 기부액이 많고 적음을 떠나 그것은 나의 한평생 삶이 축약된 결정이기 때문이다.’

이수영 광원산업 회장의 한평생 삶이 축약된 이번 기부가 향후 KAIST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탄생하는 밑거름이 되길 기대해본다.


박기성 기자  happyday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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