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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료실에서의 어경선 원장 |
지난번에 말씀드린 대로 마음은 본래 제 것이 아닌데 어쨌거나 제게 주어졌으니 참 감사한 것이지요. 감사한 만큼 섬기며 잘 보살펴야 하겠습니다.
마음을 잘 살펴야 그것이 어디로 가고자 하는지 알 수 있겠지요. 살펴서 일단 그 의도를 알게 되면 ‘그랬구나!’ 하고 인정해줍시다.
대개 우린 마음이 가고자하는 의도를 자각하지 못 하고 그냥 행동합니다. 그러고 나중에서야 그런 나를 자책하기 일쑤입니다. 혹 미리 의도를 알게 되면 그런 내 마음을 덮어놓고 나무라기 바쁩니다. 그것이 아니어도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었구나!’ 하고 알아주는 것입니다.
화가 나서 욕을 해주고 싶을 때도 있고 무서워서 도망치고 싶을 때도 있을 수 있습니다. 혹은 나도 모르게 남들과 비교를 하곤 스스로를 초라하게 생각하게 될 때 있습니다. 욕을 하거나 도망치거나 의기소침해지는 것이 아니고 또는 그런 나를 ‘아이고! 이런 바보, 멍청이!’ 하면서 나무라는 것이 아니고 ‘그랬구나!’ 하고 마음의 의도를 살펴서 헤아려보자는 것이지요.
마음을 보는 것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이렇게 하다 보면 마음이 점점 더 잘 보이게 됩니다. 우리가 어떤 물건을 잘 보려면 그 물건을 눈에서 조금 떨어뜨려 봐야합니다. 마찬가지로 마음도 조금 떨어뜨려서 요모조모를 잘 살펴야 조금 더 잘 보입니다.
먼저 그렇게 마음을 보고, 또 그것이 가고자 하는 방향을, 즉, 의도를 알고 또 그것이 어쨌거나 그 순간, 마음이 먹었던 것이므로 그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하는 것. 이것이 바로 마음을 대하는, 그러니까 섬기고 보살피는 자세일 것입니다.
몸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극기’, ‘인내’, ‘의지’, ‘하면 된다!’, 뭐 이런 것들을 배우면서 자랐습니다. 몸이 힘들어해도 마음으로 몸을 끌고 나아가서 싸워서 이기자는 것이지요. 부러질지언정 휘어지지는 말라고 배웠습니다. 해서 몸이 아무리 힘들어해도 마음으로 그것을 이겨낸 사람들을 존경하고 그렇지 못 한 나를 자책하고 그러길 반복합니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것은 마치 마라톤을 하는데 마음이 저만치 앞서가면서 몸을 보고 빨리 안 뛰어온다고 나무라는 것과 같습니다. 혹은 쓰러진 몸을 질질 끌고 가는 것과도 같습니다. 안타깝지요. 몸은 이미 오버페이스가 되어 걸을 힘도 없는데 마음만 저만치 앞서가는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마음에게 몸을 그렇게 살펴주라고 이야기해줘야 합니다. 몸을 가만히 보면서 몸의 느낌을 알아야합니다. 그리고 그 몸의 느낌이 전해주는 메시지를 들어야합니다. 그렇게 몸과 마음이 서로 사이좋게 같은 페이스로 천천히 뛰거나 걸을 때 그때 우리는 비로소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어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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