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은(1933~ )
어찌 사라진 것이 이것뿐이랴
겨우 주춧돌 몇 개와 함께
나도 姉妹(자매) 없이 남겨져
풀 가운데 우거진 꿈이여
차라리 빈 절터에 절이 있다
여기다 여기다
남은 것은
서산머리에 뉘엿뉘엿 해로서 진다
생각건대 풀벌레소리도
나와 같다
눈을 뜨면
절터에 커다란 절이 일어서서
대웅전으로 관음전으로
명부전으로
저녁이 밤이 된다
절 모퉁이 어둠 속에서
어린 사미(沙彌) 나와서
며칠 전 새벽 꿈에서 본 손
바로 그 손으로 손을 모은다
그렇구나 그 손이 만에 하나
어느 누구 어릴 적 첫 合掌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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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완하 교수 |
合掌이란 두 손을 모으면서 마음을 한곳에 조아리는 행위일 것. 아니, 머리에 이고 어깨에 지고 있던 많은 욕망과 뭇 사념들을 가차 없이 땅바닥으로 내던지는 행위일 것이다. 하나의 대상을 향하여 올리는 작은 경배(敬拜). 또 한 인간이 이 세상을 향해 드릴 수 있는 최상, 최고의 예의일 것이니.
절이란 눈앞에 보이는 화려한 가시적 공간이 아니다. 마음이 쌓인 곳, 풀 우거진 곳에서 스스로 깊어가는 자연의 이법일 터. 우주의 변화와 더불어 이어가는 생성과 소멸의 변증법. 그러므로 가득 찬 것이 빈 것이고, 텅 빈 것이 가득 찬 것 아닌가? 그렇다! “어찌 사라진 것이 이것뿐이랴”, “차라리 빈 절터에 절이 있다”. 우리 모두 그곳을 향하여 새벽꿈으로 어릴 적 첫 마음의 合掌을 하자.
김완하(시인. 한남대 국어국문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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