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시간에 쫒기는 당신을 위해

김완하교수의 문학 산책 김완하(시인. 한남대 국어국문창작학과 교수)l승인2015.05.14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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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

밀란 쿤데라(1929~ )

어찌하여 느림의 즐거움은 사라져버렸는가? 아, 어디에 있는가, 옛날의 그 한량들은? 민요들 속의 그 게으른 주인공들, 이 방앗간 저 방앗간을 어슬렁거리며 총총한 별 아래 잠자던 그 방랑객들은? 시골길, 초원, 숲속의 빈터, 자연과 더불어 사라져버렸는가? 한 체코 격언은 그들의 그 고요한 한가로움을 하나의 은유로써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그들은 신의 창(窓)들을 관조하고 있다고. 신의 창들을 관조하는 자는 따분하지 않다, 그는 행복하다. 우리 세계에서, 이 한가로움은 빈둥거림으로 변질되었는데, 이는 성격이 전혀 다른 것이다. 빈둥거리는 자는, 낙심한 자요, 따분해하며, 자기에게 결여된 움직임을 끊임없이 찾고 있는 사람이다.

 

▲ 김완하 교수

한시 바삐 달려들 가는 시대에 느림에 대한 성찰을 이 만큼 했던 적이 있었던가. 이 글은 체코의 작가 밀란 쿤데라의 장편 소설 『느림』의 일부다. 그는 느림이란 빈둥거림이 아니라 신의 창들을 관조하는 것이라고. 그 신비한 흐름을 은밀히 눈여겨보는 것이라고. 이 글을 읽는 사이에도 전 지구적으로 제트기는 날고 속도를 넘어 자동차는 달린다.

그러나 보라, 이 한 사내를. 시간과 시간 사이를 밟고 항시 시간의 벼랑을 타고 달리던 그. 언제나 시간의 공백을 딛고 시간의 그림자 밟지 않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사내. 시간의 손아귀보다 더 빨리 뛰고 시간을 죽이지 않기 위해 새벽에 나갔다 한밤중에야 돌아오던. 그가 오늘, 시간의 난간에서 추락했다. 아침 일찍 역 광장 가로지르다 갑자기 다리 힘 풀리고 시멘트 모서리에 걸려 쓰러졌다. 한마디 말도 남기지 못한 채, 그는 시간보다 서둘러 떠났다. 조금 뒤 그가 기다리던 KTX 태연히 경적을 울리며 어둠의 골목에 와 닿았다.

 


김완하(시인. 한남대 국어국문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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