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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억중 교수 삽화 |
"봄의 숲 속에는 산나물이 지천이었다.... 밋밋하게 웅덩이가 진 골짜기는 은방울꽃의 군생지였다. 넓고 건강해 보이는 잎 사이에 숨다시피 고개를 숙이고... 강렬한 향기의 꿀샘이 있는 지, 그 한가운데 들면 공포와 절망에 가까운 황홀경에 빠지곤 했다... 여름이 되면 숲의 푸르름엔 독이 올랐고 한낮의 햇볕이 무수한 잎의 독기와 예리한 스파크를 일으키며 작열할 때 낭자한 매미소리를 듣는다는 건 허무의 극치였다."(박완서, "저문 날의 삽화")
그가 사는 정남향 집 앞에는 울타리 너머로 길과 나란히 개울물이 흐르고, 그 건너로는 하천부지라 불리는 공터와 숲이 있다. 모두들 집터가 시세에 비해 비싸다고들 하지만, 그 나름으로는 숲과 공터를 덤으로 얹었다는 속셈으로 횡재하였다고 생각한다. 숲이란 바라보고 즐기고 수시로 드나들며 좋은 공기를 마시는 사람이 임자지, 땅문서 가진 임자가 무슨 소용이냐고 반문하며...
그런 그는 공터와 숲, 그 사계의 절묘한 변화에 감탄하며 살아간다. 봄에는 푸릇푸릇 살아나는 산나물과 이름 모를 꽃들의 향기에 취하고, 여름이면 섬뜩 하리 만치 짙은 숲의 색깔과 매미소리에 시름을 던다. "활엽(闊葉)이 비를 맞는 소리에 어느 날 청승이 섞이면 걷잡을 수 없는 가을이다." 나뭇잎들은 자신의 쇠락을 위장하려는 듯 온갖 색깔로 옷을 갈아입는다. 하지만 한 밤중 불어오는 작은 바람에도 이미 여리어진 잎새를 우수수 떨구고야 만다. "숲의 정직한 탄식"이다. 그 소리에 잠을 설치며 시든 아내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오래도록 온기를 탐한다. 어느 새 눈발이 내리면 숲은 마지막 잎을 떨구고, 차디찬 바람은 창문을 뒤흔든다. 나무에 따라 엉성하기도 하고 혹은 조밀하기도 하고, 하늘 향해 쭉쭉 뻗기도 하고 혹은 자유롭게 휘기도 한 벌거벗은 가장귀들이 망사처럼 숲속의 밋밋한 등성이와 골짜기의 땅모습을 훤히 드러낸다. 잎은 한 때 다채로웠던 영화를 뒤로 한 채, 갈색의 몸체는 서서히 녹아들어 땅 속으로 침잠한다. 나무들은 힘겨운 날씨를 견디어 내기 위해 스스로 다이어트를 끝내는 시간이다.
릴케의 지적처럼 풍경에는 형상이 없다. 소설 속의 그는 똑같은 자리에 놓여 있는 숲이지만 이렇듯 계절에 따라 숲의 정경을 제각각 다르게 느낀다. 거듭나는 숲의 변화를 바라다보며 그 또한 인생의 숲을 바라다본다. 숲을 그저 미적인 대상으로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사유의 대상으로 보아, 자연이 가르쳐주는 생성과 소멸의 신비를 깨닫는다. 꿈과 낭만으로 가득 찬 청춘은 사이어 들어 어느덧 노년이 다가오듯, 자연의 맹위를 거스를 수 없는 자신과 자신의 삶을...
김억중 한남대 건축학부 교수


세종시, 이희택 신임 대변인 임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