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직/수평으로 풍경 읽기

김억중 한남대 건축학부 교수l승인2015.11.14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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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억중 교수 삽화

"절하고 싶다/저녁 연기/자욱한 먼 마을"(고은/저녁 무렵)

시인이 마주친 저녁 무렵 풍경은 어떠했을까? 저 멀리 마을 어느 집에선가 밥을 짓기 위해 피어 올리는 연기와, 밥이 끓는 소리와 타는 듯한 냄새, 연기 사이로 불을 지피는 아낙의 불그스레한 얼굴과 일터에서 돌아와 저녁소반을 기다리며 잠시 쉬고 있을 남편과 철부지 아이들, 그리고 노곤한 몸을 뉘일 깊은 밤을 향해 서서히 땅거미 지는 평화로운 모습을 동시에 그렸을 터. 저녁 무렵, 지상의 모든 것들은 제 모습을 낮추어 땅 밑으로 가라앉고, 푸르스름한 연기만이 저녁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는 모습이 시인에게는 눈시울이 젖을 만큼 반가웠음에 틀림없다.

추측컨대 시인은 그 풍경을 마주치는 순간, 어느 성당이나 절간과도 비길 수 없는 성스럽고 고귀한 모습에 전율했으리라. 땅에서 난 곡식으로 밥을 지어먹는다는 것이 저 머나먼 인류의 개명이래 얼마나 경건한 가족의식이었는지를....
요즘에야 편리한 기능을 좇아 웬만한 시골에서도 전기밥솥에 밥 짓는 세상이 되었으니, 풍경도 잃은 데다 그 성스러운 뜻마저 잃고야 말았다는 자괴감이 얼마나 깊었으면 시인은 절하고 싶다 했을까?

시, 공간과 대상만 달랐을 뿐, 시인과 나의 미학적인 체험은 본질적으로 크게 다른 것 같지는 않다. 시인이 보았던 저녁연기(수직)와 먼 마을(수평)의 모습 vs 성당 첨탑(수직)과 펼쳐진 평원(수평)의 모습!
시인이 절하고 싶을 만큼 그의 마음을 커다랗게 움직였던 것은 타고난 시인의 감수성에도 원인이 있었겠지만, 그보다 훨씬 더 먼저인 것은 풍경 자체가 지닌 구도에 있었다고 보아야 옳을 듯싶다.
이를테면,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솟아오르는 저녁연기가 그토록 감동적인 모습으로 가슴에 와 닿는 이유는 낮게 수평으로 깔린 자욱한 먼 마을이 배경(ground)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고 무엇인가? 마찬가지로 먼 마을이 감동적인 것도 그날따라 저녁 무렵, 유난히도 피어오르는 저녁연기가 사무치게 다가오는 대상(figure)으로 드러나 보였기 때문이 아닌가?

그렇지 않은 경우를 상상해 보라. 만일 높은 건물이 꽉 들어찬 마을에 저녁연기가 피어올랐다면 그 연기가 그토록 소중하게 보였을 것인가? 높은 건물에 가려 연기는 보이지 않았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낮게 깔린 마을에 아무런 연기조차 피어오르지 않았다면, 어떤 계기로 감동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시 속의 풍경을 추상화시켜보면 결국 2연의 수직선(저녁연기)과 3연의 수평선(자욱한 먼 마을)의 공존과 대비가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미학적 원인이라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이 시 속에서 매우 소중한 풍경의 감상법과 감동의 원리를 마주친 셈이다. 결국 수직과 수평의 상극(相剋), 상생(相生) 관계!
이 단순한 원리 속에 아무리 복잡하고 모순에 그득한 모습을 띄고 있는 자연이든, 도시든, 건축이든, 그 모든 풍경의 감상법이나 직조법이 다 들어있지 않은가.


김억중 한남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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