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그는 누구인가(1)

김억중 한남대 건축학부 교수l승인2016.02.08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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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억중교수 삽화

꽤 오래 전으로 기억된다. 그 해 경향각지 안방을 사로잡았던 MBC의 국민드라마 '애인'을 기억하시는지? 텁수룩한 인상에 굵직한 목소리만으로도 근육질 믿음이 가는 유동근과 톡하고 터뜨리면 금방이라도 눈물이 솟아오를 듯 가녀린 여인 황신혜가 열연했던... 때는 바야흐로 배고픈 시절을 마감하고 소득수준 2만불 시대의 막이 오를 즈음이었으니, 먹고 살만하다고 자처하는 이 땅의 중년층은 온갖 재물에 광택을 입히고, 몸에 좋다는 것은 무엇이든 사냥을 다니며 정력을 키우다가, 언제부턴가 슬슬 살찐 몸을 제자리로 돌려놓기로 약속한 듯, 헬스클럽에서 몸부림을 치다가도 뭔가 저 밑바닥으로부터 채워지지 않는 욕구불만을 불씨처럼 키우며 온몸이 근질거리던 시절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애인'의 신드롬은 불길처럼 거센 것이어서, 불륜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왜 이제껏 대놓고 즐기지 못했는지 후회는 곧바로 용기와 뻔뻔함으로 승화되기에 이르렀다. TV는 대놓고 '불륜은 이제 로맨스'라고 부추겨댔으니, 저마다 '애인 만들기'는 활기찬 '중년 나기'의 대안처럼 떠오르는 듯하였다. TV 상자 속에서만 꿈틀거리던 꿈과 욕망은 어느덧 중년층의 뜨겁고 기름진 피를 타고 흘러들어, 불륜을 저마다 꿈꾸고 실현할 수 있는 새로운 유형의 집을 간절히 필요로 하였으니, 그것이 바로 꼴불견 욕망의 화신 '파크'(park)가 아니었던가? 세계 어디에도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희귀종 건축현상이었던 '전 국토의 파크화'는 그렇게 시작되었던 것이다. 오죽했으면 골프군 파크면 가든리라 했을까? 공원과 정원이 넘쳐나는 복지의 나라!

그런데, 혹시 극중 불륜의 매력남 주인공의 직업을 짐작하고 계시는지? 그가 가끔은 설계 도면을 들고 다니거나 책상에 앉아 진지하게 도면을 들여다보며 고민하는 모습으로 미루어보면 잘 나가는 건축가였음에 틀림없다. 왜 드라마 작가는 하필 그의 직업을 건축가로 지목했을까? 출근 시간도 퇴근시간도 자유로운데다가, 예술가의 지적인 분위기도 풍기고, 무엇보다도 돈도 많이 벌 것 같은 이미지가 딱 들어맞은 탓이 아닐까? 우아하게 바람을 피려면 이 정도의 조건은 갖추어야 설득력이 있어 보일 터이니 말이다. 우습게도 그 해 전국대학 입시에서 건축과가 최고의 경쟁률과 커트라인을 동시에 차지했었던 것을 기억하시는지? 그가 누렸던 건축가의 위상과 매력이 얼마나 대단했던 것인지를 반증하고도 남음이 있으니....(아! TV는 중년층에게는 바람피우는 법을 가르치고 청소년에게는 진학 진로지도까지 확실하게 챙겨주는 공립학교다!) 그렇다면, 이 땅에서 건축가라는 직업은 과연 드라마처럼 로맨틱하고 환상적인 것일까?

"...그런데 막상 건축을 하게 되어 가끔 현장에 가 볼 때마다 눈앞에 구체성을 띠고 나타나는 건물이 자기 설계에서 유리되어 조화를 잃어감을 목도하지 않으면 안 되곤 했다... 현장 감독이 제멋대로 변경해놓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가족들이 이렇게 해야 삶이 편리하다고 하여 고친 데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인철은 그 때 자기 정신의 한 부분이 무참하게 짓밟힌 듯한 느낌을 맛보았던 것이다." (황순원, "일월")

'일월'에 나오는 주인공 건축가를 보면 그런 환상은 일순간에 스러지고 만다. 추측컨대 젊은 건축가 인철은 설렁설렁 일하면서 먹고사는 건축업자는 아닌 게 분명해 보인다. 그가 설계한 건물을 제 생명으로 알 듯, 끔찍이 여기는 것으로 보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수많은 사람이 피아노를 쳐도 진정한 피아니스트는 드물 듯이, 모두가 설계를 한다고 해서 다 건축가라고 말할 수는 없다. 자신의 영혼을 다 바치려는 의지와 광기 어린 삶을 사는 '예술가로서 건축가'의 타이틀을 한정시킨다면 그 숫자가 그리 많지 않다고 보아야 옳다.

제대로 된 건축가라면 바람을 피울 만큼 결코 자유롭거나 한가롭지 못하다고 단언 할 수 있다. 좋은 집을 설계하기 위해 미친 듯이 노력하는 건축가의 작업을 상상해 보라.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더 나은 디자인을 찾아 끊임없이 헤매는 모습을....

그가 그리다만 꾸겨진 종이는 미지세계의 탐험을 앞둔 자의 설래임과 망설임이 손땀으로 얼룩져 있다. 꾹 눌러 그린 잉크 자국에는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을 염원하는 두런거림이 침전물처럼 가라앉아 있다. 몇 개의 그림들이 지워졌거나 겹쳐진 부분은 부초처럼 떠도는 생각들이 서로 부대끼며 언어를 향해 달려가다 아슬하게 멈춘 전쟁터나 다름없다. 박박 그어진 선들은 생각을 미처 따라 잡지 못한 형체의 잔해이며, 때로는 고통을 주체하지 못한 자해의 상처이기도 하다.

사지우사(思之又思)하고, 우념사지(又念思之)하면, 신장통지(神將通知)라!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 마침내 떠오르는 법을 너무도 잘 아는 건축가는 운명적으로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갈구어대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작품의 완성도는 결국 자신과의 싸움이 전제된 노동에 달려 있으므로, 건축가에게 시간은 매순간 마지막 초침처럼 다가서는 저승사자나 다름없다. 그러니 어찌 허튼 수작을 할 겨를이 있겠는가? 그의 눈빛을 보면 결코 드라마 주인공 유동근처럼 불륜의 욕망으로 이글거리지는 않았으리라....


김억중 한남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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