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숙한 시간

김완하 (시인. 한남대 문예창작학과 교수)l승인2016.03.13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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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 

지금 세계의 어디에선가 누군지 울고 있다.
세계 속에서 까닭없이 울고 있는 그 사람은
나를 위해 울고 있다.

지금 세계의 어디에선가 누군지 웃고 있다.
세계 속에서 까닭없이 웃고 있는 그 사람은
나를 위해 웃고 있다.

지금 세계의 어디에선가 누군지 걷고 있다.
세계 속에서 정처없이 걷고 있는 그 사람은
나를 향해 오고 있다.

지금 세계의 어디에선가 누군지 죽고 있다.
세계 속에서 까닭없이 죽고 있는 그 사람은
나를 쳐다보고 있다.

 

▲ 김완하 교수

릴케는 오스트리아 태생의 독일 시인으로 보들레르에게서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서정시의 새로운 양식을 개발하였다. 그는 물리적 대상에 조형적인 본질을 포착하고자 하는 사물시를 추구하였다. 이러한 시의 형태를 통해서 릴케는 전통적인 독일 서정시로부터의 일탈을 꾀하였고, 이를 극단적으로 순화시키고 정제하여 다른 예술과는 확연히 구별 짓게 하였다. 그의 주요 작품으로는 <두이노의 비가>,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 등이 알려져 있다.

사랑도 이 정도가 된다면 그건 위대한 사랑이라 말할 수 있겠다. 어디서 누가 울고, 누가 웃고, 누가 이리로 오고 또 어딘가에서 누군가 죽어간다면 그건 모두 나와 관계되어 있는 움직임이다. 내가 굳이 관심을 갖지 않아도 그건 모두 나에게 다가오는 세계의 모습인 셈이다. 하여 인류의 깊은 공동체적 연대감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이 시는 1세기 전에 이미 오늘날 우리들 삶을 미리 내다보고 경종을 울리고 있다. 그러니 너와 나는 둘이 아니다. 우리는 서로 굳게 하나의 세계. 내가 있음으로 해서 네가 있고 네가 있음으로 해서 내가 있는 셈이니. 그러니 이제 봄이 오고 네가 있는 창밖에 작은 꽃 한 송이라도 피어나면 그건 바로 내 눈동자에 고여 있는 희망이라 생각해라.


김완하 (시인. 한남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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