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부터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김 억중(건축가, 한남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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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소득수준 3만불 시대, 이 시점에서 우리 모두가 떠올려 봐야 할 화두가 있다면 어떤 것이어야 할까? 내 경우라면 단연코 이 시대의 '집다운 집', 그 진정한 의미와 가치에 대한 물음을 제일 먼저 떠올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굳이 집에 대해 말하려는 이유는 집이 먼저 바뀌어야 사람이 바뀌고, 사람이 바뀌어야 세상도 바뀔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화가 반 고호는 낯선 이국땅에서 숨을 거둘 무렵 그의 고향 준데르트 마을 굴참나무에 늘어놓았던 어머니의 흰 빨래 모습을 회상했다고 한다. 평생 동안 그의 가슴 속에 잊지 못할 그림처럼 각인되었던 흰 빨래 풍경은 그의 외롭고 고단했던 삶을 추스르며 작가 정신을 치열하게 다질 수 있었던 정신적 지주였다고 한다. 반 고호의 경우처럼 때로는 집주변 어느 장면 하나도 결코 사소하다고 할 수 없을 만큼 집이 지닌, 깊고 깊은 속내를 이해하지 않고는 집다운 집을 그릴 수 없을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집 안팎 어느 구석엔가 삶의 충만한 의지와 빛바랜 추억을 가슴 속 깊이 새겨 줄만한 힘이 내장돼 있어야 비로소 집다운 집이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은 아이들에게 어떤 소중한 추억을 평생의 자산처럼 선사해주고 있는 지 곰곰이 살펴볼 일이다.
"그 집에서 나는 삶의 계율을 익혔습니다/ 동그랗게 깎인 사과의 심장을 맛보았습니다/ 불가사의한 가족의 현, 그 나긋나긋한 갈등들을 호흡했습니다." 라고 했던 김상미 시인의 '그 집'을 보면 내게도 그런 집다운 집이 있(었)는지 되물어 보게 된다. 하늘과 땅과 사람 사이로 깊게 뿌리내린 그 집만의 비밀에 대해 반문해보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집속엔 어떤 특별한 건축의 에너지가 함축돼 있기에 그만의 아름다운 추억을 이처럼 아름답게 고백할 수 있는 건지 부럽기 그지없다.
시인은 그 집속에서 삶의 계율을 익혔다 했으니 집은 등록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학교에 다름 아니었으며, 갈등을 곰삭히며 삶속의 온유한 사랑을 함께 나눌 수 있었다는 점에서 가족의 성전이었음에 틀림없다. 더욱 더 놀라운 것은 어린 시절 그 집속에서 삶의 심장을 깊이 맛볼 수 있었다 했으니, 그의 풍부한 감성과 인성교육은 집에서 거의 다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시인의 8할을 다 키웠다 해도 과언이 아닌 그의 집은 실로 위대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시인의 집이 으리으리하거나 대단한 인테리어 장식으로 그득했던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사람이 집을 만들고 집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처럼 시인의 심상 또한 알게 모르게 처마 깊은 건축의 형상을 그대로 닮아, 가족 간의 갈등을 포용하고 화해할 줄 아는 지혜도 자연스레 익혔으리라 여겨진다.
'대청마루 한 켠에서 들려오던 엄마의 다듬이질 소리'와 '혀를 끌끌 차시면서도 끝까지 신문을 읽어 내리시던 아버지'의 그 자리, 그 디테일한 풍경들과 무언의 대화만으로도 삶의 계율을 자연스레 터득했을 법하다. 집에 혼자 있을 때면 손때 묻은 기둥이나 대청마루에 살을 맞대고 가족의 따뜻한 온기와 편안한 휴식을 떠올릴 수 있을 만큼 경건한 분위기가 자리했었을 터이다. 그의 집은 삶의 진실, 그 행복과 지혜를 일깨우는 일상의 도량이었으며 나긋나긋한 현 소리처럼 늘 되살아나는 추억의 사원이었던 것이다.
누구든 그런 집속에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함부로 굴렸을 리 만무하지 않겠는가. 그러기에 자신을 시인으로 키워줬고 삶의 은총을 듬뿍 누리게 했던 그 집을 마음 속 깊이 고마운 존재로 기억하고 있으리라는 생각에 이르면, 그 동안 우리는 집을 대하되 예의는커녕 하인 부리듯, 돈 버는 수단쯤으로 막 대해오지 않았나 하는 자괴감마저 든다.
이 대목에서 '집부터 바로서야, 교육이 제대로 서고 그래야 이 나라의 기본이 바로 설 수 있다'는 교훈이 선연하게 드러나지 않는가. 우리 자녀들의 교육문제, 결코 학교나 정부가 마련한 제도나 정책만으로 쉽게 풀릴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시인이 그랬던 것처럼 보다 많은 아이들이 집다운 집에서 자랄 수 있어야 비로소 인륜의 기초 위에 교육의 근본이 올바로 설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젠 집을 짓더라도 그럴 듯한 겉모양에 휘둘리기보다는 뜸을 들여가며 '생각의 집'부터 튼튼하게 지어야한다. 집 안팎 구석구석 보고 느끼고 배우며 살아가는 묘미를 더해 줄 수 있는 집, 바로 그런 집속에 우리 시대의 밝은 희망이 담겨있으니 말이다.
때마침 내게 소중한 지면이 주어졌으니, 평소 생각해 오던 대로 여러 채의 ‘생각의 집’을 그림으로 그리고, 그 밑에 짧은 글을 붙여 집다운 집의 진면목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함께 음미해볼 수 있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연재를 시작해보려 한다. 독자 여러분 모두 Dream House의 실현을 위해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하는 것이 나의 소박한 바램이다.
(김억중 교수는 누구?)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건축학과
스위스 로잔연방공과대학 건축가 diplome
현재 한남대학교 건축과 교수
저술
건축가 김억중의 읽고 싶은 집 살고 싶은 집, 동녘, 2003
나는 문학에서 건축을 배웠다, 동녘, 2008
개인전
제 1회 아주미술관, '기호의 힘' (2004)
제 2회 KBS 홀, 이안 갤러리, '모델하우스' (2007)
제 3회 이안갤러리, '애물단지' (2010)
제 4회 갤러리 PEN, '愛物과 碍物사이'' (2011)
제 5회 갤러리 BIBI SPACE, '애오려전(愛吾廬展)‘(2014)
주요 건축작품
유성구 문화원(2002)
대덕 아주미술관(2003)
대전 엑스포 시민광장 재창조 사업 (무빙쉘터, 미디어 큐브 및 야외공연장 2011)
무호재, 송죽재, 어사재, 사미헌, 수경당, 사가헌, 완락재, 무영당, 애일헌, 사의재 등 주택 연작
김억중 교수 kuj725@hanmail.net


세종시, 이희택 신임 대변인 임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