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끄락

김완하 한남대 문예창작학과 교수(시인)l승인2016.05.13 09:56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머리끄락                     
                                         마경덕(1954~ )

그렁께 니 아부지, 아부지가…
아녀, 그만 들어가
딸깍

전화는 끊겼다. 또 꿈에 아버지를 보신 게지, 나는 잠깐 혼자 남겨진 엄마를 생각했고 TV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설거지를 마쳤다.

그렁께 그 머시냐, 머리끄락이,
머리카락이 뭐어?
거시기 말이여
딸깍

사흘 후에 온 전화도 싱거웠다. 나는 새우깡 한 봉지를 아작내며 읽던 책을 마저 읽었다.

……
엄마, 울어?
금메 밥 묵는디, 밥을 묵는디…

천리 밖에서 울음이 건너왔다. 늦은 저녁을 먹는데 흰 머리카락이 밥에서 나왔단다. 울음이 목에 걸려 밥을 삼킬 수가 없단다. 지난번은 장롱 밑, 지지난 번엔 서랍에서 아버지를 보았단다. 아무 데나 머리끄락 흘린다고 타박을 줬는디…니 아부지 세상 버린 지 석 달인데 아직도 구석구석 살아 있당께. 우리 엄마 우신다. 늙은 여자가 아이처럼 운다.

 

▲ 김완하 교수

이 시는 대화적 상황을 강조하고 있다. 시가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요소는 시인과 독자, 그리고 그들 사이에 오가는 메시지이다. 이미 야콥슨은 이러한 관점에서 문학을 언어학적 소통 구조로 밝혀놓은 바 있다. 그는 문학을 발신자와 수신자 사이 전언의 전달로 파악하였는데, 전언이라는 말을 사용하여 수신자의 능동적인 역할을 중요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바흐친은 야콥슨이 사용한 전언이라는 용어를 언술(담화)로 이해함으로써 발화자와 수신자, 담화 내부의 화자와 피화자의 관계가 진정한 대화의 관계라고 주장하였다. 이점에서 시도 하나의 극 양식으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이 시에는 시집간 중년의 딸과 친정에 혼자 머무는 어머니가 등장한다. 그리고 시의 무대는 딸네 집 안방이다. 서서히 무대 안의 조명이 밝아지며 전화통이 보이고 중년의 여인이 앉아 있다. 그 딸은 사흘 전에도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고, 당일은 “새우깡을 아작내며 읽던 책을 마저 읽었”던 것이다. 당연히 새우깡 봉지가 그 곁에 뒹굴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먼저 떠난 아버지의 ‘머리끄락’이다. 몸은 떠나 저승 어딘가로 가 있겠지만 방구석 이곳 저곳에 흰 머리카락이 뒹굴고, “늦은 저녁을 먹는데 흰 머리카락이 밥에서 나왔단다”. 어머니의 울음은 전화선을 타고 가까이 다가온다. 하지만, 시인에겐 그 소리가 “천리 밖에서 울음이 건너왔다”고 한다. 사람의 인연이란 모진 것이어서 죽음에 가닿은 아버지가 남긴 흰 ‘머리끄락’ 하나로도 지상에 남은 ‘어머니’는 아버지의 전존재를 고스란히 껴안는다.

이 시의 마지막이 절창이다. 그만큼 여운이 길다. “아무데나 머리끄락 흘린다고 타박을 줬는디...니 아부지 세상 버린 지 석 달인데 아직도 구석구석 살아 있당께. 우리 엄마 우신다. 늙은 여자가 아이처럼 운다”. 어머니는 늙어도 여자이고, 그래서 아버지를 떠올리며 아이처럼 우는 것이다. 머리카락 흘린다고 타박 준 것이 정을 떼게 한 것인지, 아니면 정을 더 깊게 한 것인지.....이제 무대에 서서히 불빛이 약해지면서, 그 어둠 속에서 “우리 엄마 우신다. 늙은 여자가 아이처럼 운다”. 막이 내린다.


김완하 한남대 문예창작학과 교수(시인)  
<저작권자 © 미디어대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기기사

기사 댓글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최대 400byte

숫자를 입력해주세요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대전광역시 유성구 봉명동 551-7 한진오피스텔 315호
대표전화 : 010-5455-4311  |   등록번호 : 대전 아 00225  |  등록년월일 : 2015. 4. 10  |  발행인·편집인 : 박기성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기성
Copyright ©2015미디어대전. All rights reserved.